김장을 하고 나서 무청을 말린 게 시래기다.이 시래기는 우리 조상들에게 겨울철 양식이나 다름없었다.찬물에 우린 시래기에 된장을 풀고서 쌀이나 보리를 넣고 푹 삶으면 한 식구의 끼니는 충분했다.

보기에도 신통찮은 시래기죽이 춥고 배고팠던 시절 식탁을 지켜온 것이다.등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켜온 꼴이다.

그래서 시인 도종환은 시래기를 '헌신적'이라고 치켜세웠나 보다.

그는 '시래기'라는 시에서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기억하는 손에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중략)허기를 메우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맞아 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이라고 했다.

구황식품으로 치부되며 잊혀졌던 시래기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웰빙식품으로는 그만이라는데 구수하고 깊은 맛에 식이섬유가 많고 철분,칼슘,비타민 등이 풍부하니 관심을 끌 만하다.

환자들의 건강식으로도 인기라고 한다.조악하기만 했던 시래기가 우리 입맛을 부활시키는 타임머신이 되고 있는 셈이다.

얼마전 무청이 간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되자 시래기 품귀까지 벌어졌다.

시래기에 대한 추억도 인기몰이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나이가 들수록 옛날에 먹던 음식을 찾는다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시래기라는 것이다.

시래기 맛을 보면 어머니의 젖 맛을 느낀다고도 한다.시래기를 먹고 난 젖을 빨며 자랐기 때문일 게다.시래기의 누른 빛은 곧 우리 땅의 빛깔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처럼 먹거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시래기가 새롭게 조명을 받는 것은,모양만 번지르르하고 겉맛으로 혀끝만 자극하는 음식에 대한 반격이기도 하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이에게 "시래기죽도 못 얻어 먹은 것 같다"는 말도 이제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마치 시래기가 영양식과 다이어트식의 지존으로 떠오른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