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을 돌이켜 보면 한국 국민은 '경제 우선'을 선택했다.새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선거공약 실현에 집중할지,아니면 더욱 긴급한 과제에 몰두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경영컨설턴트로서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대통령에 취임하면 선거 기간 중 내놓았던 정책과 공약은 모두 잊어 버려라"고. 선거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다.어쩔 수 없이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공약을 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정책은 달라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이어진 진보 정권의 경제정책에 낮은 점수를 줬다.양극화로 저소득층의 불만은 쌓일 대로 쌓였다.때문에 경제인으로서,서울 시장으로서 명확한 실적을 냈던 이명박 당선인에게 희망을 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대통령이 정책을 펴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무엇보다 과거 10년간 축적된 경제문제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한국의 단기 대외채무는 1997년 수준을 웃도는 1600억달러를 넘어 위기상황이라 할 만하다.특히 그중 4분의 3은 은행 부문의 채무다.원고.엔저를 이용한 엔캐리 트레이드가 원인이다.이 과잉 자금이 부동산 가격과 주가 상승을 부추겼다.
가계 부문엔 과잉 대출로 빚이 쌓여 있기도 하다.한국의 가계 부문은 800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5%에 해당된다.일본은 반대로 GDP의 2배를 넘는 가계 부문 저축이 있다.한국의 가계가 그만큼 더 궁핍하다는 얘기다.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경제위기 수습에 쫓겼듯이 이명박 대통령도 미국발(發) 금융불안으로 인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해결하는 게 첫번째 과제가 될 가능성도 높다.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과잉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만 향하는 것은 건전한 것이 아니다.일반 가정이 대출 빚에 짓눌려 있는 것이 좋은 모습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경제성장도 대기업들이 풍부한 자금으로 투자를 하고 수출을 늘려 이뤄진 것이지 노동 생산성 등이 향상돼 얻어진 것은 아니다.대기업들은 노조와 적당히 타협할 방법만을 찾고 있다.대기업 노조 근로자들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귀족이 된 지 오래다.이는 한국의 장래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의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그런 가운데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공장을 중국 등으로 이전해 청년층(15~29세)은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 진보정권의 친북정책이나 평등교육 정책에 진저리가 난 부자들은 아이들을 미국 등 해외에 내보냈다.매년 인구의 1%에 가까운 40만명이 해외에 나가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32만명에 그친다.출입국 순감인원 8만명 중 대부분은 20세 이하의 학생들이다.나라의 장래에 기대를 갖지 않고,아이들의 교육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모두 이명박 당선인이 취임하자마자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이런 과제를 생각하면 한국 경제가 갑자기 성장력을 회복해 높은 성장을 이루길 기대하긴 어렵다.선거 공약인 연 7% 성장은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한국에 오랜만에 훌륭한 능력을 가진 경제 대통령이 탄생한다.그러나 한국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선거공약의 추진을 일단 보류하고,대통령의 훌륭한 재능과 수완을 부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나의 조언이다.
정리=차병석 도쿄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