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은 2008년 새해 첫날 이례적으로 '해킹 주의보'를 발령했다.제3국 해커들이 우리 장병들의 개인 이메일을 통해 군부대 컴퓨터에 침투,군사자료를 빼가거나 열람하는 사례가 포착됐다고 발표했다.장병들에게 '북한군 무력 현황'이란 제목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첨부한 이메일을 보내는 수법이 사용됐다는 것.'제3국'은 중국을 지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의 해킹 주의보 발령은 연휴 기간이라서 주목받지 못했다.하지만 해킹 전문가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군 당국이 외국 해커의 침입을 시인했다는 점,굳이 휴일인 새해 첫날 주의보를 발령했다는 점,제3국(중국)의 해킹에 대해 경고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최대 보안업체인 미국 맥아피는 지난해 11월 '사이버 냉전(Cyber Cold War)'이 터졌다는 내용의 '가상범죄 리포트'를 냈다.정부가 지원하는 해커들이 외국 정부,군,기업 등의 네트워크에 조직적으로 침투해 정보를 빼가고 있다고 경고했다.미국과 소련이 대결한 냉전시대가 가고,이념도 없고 국경도 없고 밤낮도 없는 '해킹 전쟁'이 시작됐다는 경고였다.

영화 '다이하드4.0'에 나오는 것처럼 국가 네트워크가 일제히 마비되는 상황이 지난해 4월 에스토니아에서 실제로 발생했다.6월에는 미국 펜타곤(국방부) 전산망에 해커가 침투해 파문을 일으켰다.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2007년 당신이 놓친 올해의 뉴스' 1위에 '사이버 전쟁 시작'을 꼽고 2007년을 '사이버 전쟁 원년'으로 규정했다.

사이버 공격의 표적은 한국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국가다.맥아피는 보고서에서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고 인터넷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표적이라고 지적했다.보안이 허술하기까지 하다면 그야말로 '밥'이다.국가 기밀이든 기업 기밀이든 언제든지 탈취당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 정부(산하 기관 포함)에 대한 해킹은 파악된 것만 7588건.1시간당 1건꼴로 터졌다.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정부 전산망에 대한 공격 시도는 하루 1억건에 달한다.군 당국이 새해 첫날부터 해킹 주의보를 내린 것은 사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