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훈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원장 mwsung@snu.ac.kr >

지난 글에서 우리나라 의료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국가 성장을 이끄는 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다른 어떤 분야에 비해 우수한 인력이 의료계로 진출하고 있음에도 어느 신문이 지적한 대로 '의대생은 1류,의사는 2류,병원은 3류'란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OECD 국가들 중 3위에 오를 만큼 양질의 보건의료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지금 우리 나라 대부분의 종합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혼잡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의사와 간호사의 눈치를 보며 간신히 진료를 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소위 '3분 진료'를 받고 있다.낮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 의료시스템의 한 단면이다.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 누구도 이를 '효율적'이라거나 '생산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더 염려가 되는 것은 최근 심화되고 있는 의료시스템의 기형적 변화다.수년 전부터 젊은 의료인들이 촌각을 다투어 생명을 살려내는 의료의 본질적인 의무는 피하고,다소 수월하면서도 제도적 통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특정 전공 분야로 몰리고 있다.또 의료 산업의 육성을 논하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일부 분야들을 활용,해외 환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본질적인 의료 행위들이 너무 제한적인 제도의 틀에 묶여 있기에,제도밖의 진료 행위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왜곡된 의료시스템의 결과다.

필자가 의과대학을 거쳐 전공의로 일할 때는 우수한 학생들이 내과,외과,신경외과 등 주요 질환을 다루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추세였다.하루에 2~3시간 간신히 눈을 부치고 하루종일 솜 뭉치 같은 몸을 끌고 다니면서도 사회적 존경과 보상이 기대되었기에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인데,지금은 젊은이들의 눈에 이러한 미래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일부 특정 전공 분야를 선호하는 젊은 의사들의 의식을 개탄하면서 전공의 시절에 일부 봉급을 지원한다고 해서,과연 이들이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될까.

물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의료 인적 자원의 왜곡은 의료 자원을 분배하는 물꼬를 어디로 틔워주느냐에 따라 그 분야에서 미래의 비전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때 바로 잡아질 수 있을 것이다.의료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가 고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고기(인적자원)가 자연스럽게 몰릴 수 있도록 충분한 물(자원)이 고이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