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MBC TV 소비자 고발프로그램 '불만 제로'에서는'종이컵 보증금제'의 이면을 다뤘다.'1회용 컵 재활용을 통한 환경 보호'라는 명목 아래 커피나 음료를 사들고 나가는 소비자에게 50∼100원씩 꼬박꼬박 물려온 '종이컵 값'이 본래 취지와 달리 업체 멋대로 쓰인다는 내용이었다.

종이컵 값의 환불률은 높아야 30%대.나머지는 환경장학금 지급 등 환경 보전 활동에 쓰고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게 돼 있다.그러나 알아봤더니 한 곳에선 환경가방을 만들었지만 자사 제품을 일정량 이상 구매한 사람에게만 나눠줬고 어떤 곳에선 그 돈으로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보증금이지 실제 돌려받는 사람은 적고 사용처를 제대로 관리하는 곳도 없으니 눈 먼 돈으로 여기고 판촉비나 일반경비로 지출했다는 얘기다.뿐이랴.비닐봉투나 종이백 무상 제공을 금지하고 위반업소를 신고하면 포상금(2만∼15만원)을 지급한 결과 전국에서 봉파라치(전문신고꾼)가 날뛰고 눈물짓는 가게주인들이 속출했다.

그렇다고 1회용품 사용량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2007년 상반기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의 종이컵 판매량과 유통업체의 봉투ㆍ쇼핑백 구매량 모두 2006년 하반기보다 증가했다는 마당이다.이것조차 규제가 약한 탓이라던 환경부가 인수위 지침에 따라 종이컵 보증금제 폐지를 추진한다고 한다.

환경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변덕스런 날씨로 봐 지구가 탈이 났다는 건 분명하고 빙하가 녹아 살 곳을 잃은 펭귄의 모습은 안타깝다.연습장이 모자라 연필로 쓴 위에 볼펜으로 덧쓰고 설탕통을 반짇고리로 사용하던 시절에 자란 만큼 자원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데도 대찬성이다.

그러나 업체와 소비자 모두 떨떠름하고 관리도 안되고 실효성도 적은 제도를 우기는 건 또 하나의 전봇대에 다름 아니다.1회용 컵 보증금만 없애고 비닐봉투와 종이백 값은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딱하다.차제에 모두 없애고 장바구니를 가져오면 50∼100원을 할인해주는 방식을 도입하는 게 백번 낫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