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

이번 17대 대통령 선거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길이 남을 선거였다.헌정(憲政) 사상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대통령을 탄생시켰다.지방자치단체장이 국가의 수반(首班)이 되는 일은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된 외국의 경우에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특히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다.미국의 경우 1977년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주지사 출신이었다.지미 카터는 조지아 주지사였다.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를 이끌었다.빌 클린턴은 아칸소 주의 최연소 주지사였다.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텍사스 주지사를 역임했다.유일한 예외는 1989년에서 1993년 사이에 집권한 아버지 부시였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지방자치단체장이 임기 중 빼어난 업적을 쌓았을 때다.미국의 주지사 출신 대통령들은 주지사 임기 동안 눈부신 성과를 냈다.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터도 조지아 주지사 임기 중에는 주정부의 크기를 줄이고 인종 차별을 완화하는 업적을 남겼다.

둘째,전업(專業)정치가 출신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졌을 때다.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의원 출신이었다.해리 트루먼과 존 F 케네디는 상원의원이었다.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는 하원의원을 지냈다.하지만 70년대를 거치며 전업 정치인 출신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졌다.이들의 임기 중 베트남전 패전,스태그플레이션,그리고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이 일어나며 국정 혼란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조건 하에서 등장하는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은 정치 발전과 지방자치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영향을 끼친다.

첫째,민주주의를 성숙하게 한다.지방자치단체장들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경우 유권자들이 흑색 선전이나 지켜질 수 없는 허황된 약속만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에게 휘둘릴 여지가 줄어든다.관료 집단을 거느리며 정책을 집행해 본 경력이 있는 후보들은 수없이 많은 이익집단들의 요구를 조정하며 행정을 해 본 경험이 있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둘째,지방자치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긍정적이다.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임기 중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한다.아울러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지방자치단체의 발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훗날 있게 될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로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했을 때 이명박 당선인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이 당선인이 향후 5년의 임기 동안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면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미국의 경우와 같이 빼어난 지방자치단체장 경력이 대통령 후보의 필수 자격 요건으로 정착하게 될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행정 경험이 풍부한 후보들 사이에서 유권자들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대권을 꿈꾸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퉈 훌륭한 업적을 남기면서 1991년의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선거로 본격화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이뤄질 것이다.하지만 이 당선인이 실망만 안겨 주고 임기를 마치게 될 경우에 국민들은 또 다른 유형의 대통령을 찾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의 유산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다시 도약시키겠노라고 약속했던 서울특별시장 출신의 이 당선인.당선인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과 지방자치제 발전을 위해서도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