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의 연구.개발(R&D)에 3조5000억원을,현대제철에는 2011년까지 5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전 계열사를 합쳐 11조원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주요 그룹 총수들 간의 '경제인 간담회'가 있던 지난달 28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간담회 장소인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이 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이날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직접 투자계획을 밝힌 정 회장의 모습은 사상 첫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을 맞아 달라진 재계의 분위기를 확연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암운 드리웠던 2007년


1년 전인 지난해 이맘 때만 해도 현대.기아차가 처한 상황은 최악이었다.주요 해외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는 경쟁 격화로 인해 판매가 정체되거나 줄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내수시장에서는 수입차의 공세를 막아낼 마땅한 카드(신차)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경파가 주도한 노조는 성과급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가 하면 울산공장 시무식에서 경영진에게 소화기 분말을 뿌리는 등 난동을 부려 노사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 동안 품질 경영 및 글로벌 경영 전략을 통해 어렵게 이뤄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회사 안팎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대외적으로도 미국시장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희망이 움트는 2008년


그러나 최근 현대.기아차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무엇보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소비 침체 속에서도 미국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노사 임.단협을 무분규로 마무리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정 회장은 경제인 간담회에서의 깜짝 발언 이후 계속해서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그는 지난 8일 최고급 세단 제네시스의 신차 발표회에서 "제네시스는 기술과 디자인,성능 등 모든 면에서 세계 명차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차"라며 "10년 이상 탈 수 있는 내구성을 갖췄다"고 단언했다.

앞서 지난 2일 시무식에서는 판매 목표와 매출 목표를 크게 늘린 공격적 경영계획을 밝혔다.현대.기아차의 올해 국내외 판매 목표는 480만5000대.지난해 판매 실적보다 21.1%나 높여 잡았다.전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매출 목표도 지난해보다 14.6% 증가한 118조원으로 정했다.투자도 대폭 늘어난다.정 회장이 밝힌 현대.기아차의 R&D 투자액 3조5000억원은 지난해 투자계획에 비해 35.0%나 증가한 액수다.

◆브랜드 가치 높여라


정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품질과 생산은 이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마케팅과 브랜드 가치 향상에 힘써 2008년을 현대.기아차그룹이 재도약을 할 수 있는 전기로 삼자"고 말했다.

제네시스를 비롯해 기아차 모하비와 뉴 모닝 등 연초 출시된 신차들은 당초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계약대수를 기록하면서 정 회장의 이 같은 포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지난 10일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LPG(액화석유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카 시판을 허용,하이브리드카 등 미래형 친환경 차량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올해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