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20%란 수치 자체는 이제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새로 출범할 정부가 대표적 민생 정책으로 내놓은 통신비 ‘20% 인하’가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16일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가 20%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으나 최근에는 인수위에서도 20%라는 수치를 쓰지 않는 등 방향이 바뀌고 있다”며 “결합상품 도입 등 규제 완화 방식이 굳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관계자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에서 6%로 조정한 것처럼 통신비 인하폭 20%도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그동안 인위적 방식이냐, 업계 자율에 맡기느냐를 놓고 혼선을 빚어오다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보고에서 재판매 사업자의 시장 진입 완화와 경쟁체제 도입 등 민간 자율에 방점을 찍었다.

사실 올해 통신업계 순이익률이 10% 가량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20% 요금을 일괄 인하하면 적자를 감수하라는 것이어서 인위적 방식은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게 그동안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더욱이 이 당선인은 “불필요한 통신 과소비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며 “국민들에게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연령이나 업무 등에 따른 사용 실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신비를 내리면 소비는 늘어난다는 점에서 요금 인하 방침과는 다소 배치되는 발언을 한 것으로, ‘20% 인하’에서 뒷걸음치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간 업계의 역할을 강조하다 느닷없이 국민들의 소비 패턴 변화를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처럼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정하는 ‘누진제’ 도입 얘기가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업계 입장에서는 과소비를 줄이면서 가계 통신비 부담을 완화하라는 주문에 대해 어리둥절한 분위기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고객의 통신 사용 패턴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 보자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요금을 낮추면 사용량이 늘기 때문에 절충 방안이 마땅치 않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과소비 언급은 DMB와 와이브로 등 신규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업계와 정부가 기울여온 노력과도 거리가 있다.

어쨌든 업계로서는 늦게나마 자율적 인하 추진이 긍정적이지만, 그동안 불확실성을 야기해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등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인수위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2일 440.48까지 올랐던 통신업종 지수는 한달여만에 18% 가량 급락했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려면 시장에 미치는 효과와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다각적 분석을 거쳐야 하는데, 일단 먼저 내뱉어놓은 후 분석하고 방법을 찾으려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위적 요금인하는 소비자단체조차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방안이었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간사는 “인위적으로 20%란 수치를 정해놓고 인하하는 것은 권위적 통제이며 언제든 다시 인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 안 된다”며 “경쟁 활성화와 규제 완화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또 15일 관련된 입장을 밝히면서 “대부분 현 정부가 규제제도 개선 로드맵을 통해서 이미 제시한 바 있는 중장기 방안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마치 당장 요금인하와 관련된 조치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남곤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인수위가 20% 인하라는 비현실적인 제안에서 한 발 물러나 사업자들의 의견과 절충해 가는 것 같다”며 “과소비 언급 역시 20% 인하가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