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저만큼 왔다고 다들 좋아하는데…그렇지만 막막하지요."

삼성그룹 한 임원은 새 정부 출범을 한 달여 앞둔 요즘의 회사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10년 만에 찾아온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기업친화적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비자금 의혹 특검'을 받고 있는 삼성은 아직 투자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현재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은 신규 투자를 보류한 채 일상적인 경영에만 매진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삼성은 특검 정국이 끝나는 대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 지속 성장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내부적으로는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 분야에 지난해보다 3조원가량 늘린 24조∼25조원가량을 집행하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족쇄만 풀린다면

당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삼성도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기업친화적인 정부가 등장하는 데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그룹 관계자는 "10년 만에 CEO(최고경영자)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는 만큼 삼성을 비롯한 모든 경제계가 어느 때보다 규제 완화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가지면서 한번 해보자는 의욕에 충만해 있다"고 전했다.

사실 삼성은 국내 최고의 기업이면서 글로벌 차원에서도 톱 클래스(top-class) 기업 반열에 올랐지만 그동안 각종 규제의 '1차 타깃'이 돼 왔다.'금융산업구조조정에 관한 법률'(금산법)과 공정거래법이 대표적이다.이들 법률은 정치권에서조차 '삼성을 겨냥한 법률'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금산법의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등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율을 낮추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정거래법은 금융회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둘 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흔들 가능성이 큰 법률들이다.

따라서 삼성은 이 같은 규제가 차기 정부에서 풀릴 경우 보다 안정적인 투자 확대 등 본연의 기업경영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도 삼성이 내심 기대하는 규제완화다.그동안 묶여있던 투자를 확대할 수 있고 기업 인수합병(M&A) 작업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이건희 삼성 회장도 지난해 말 이명박 당선인이 마련한 재계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기업들은 분위기만 조성되면 투자를 확대할 수 있고 기업들의 활력도 크게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투자는 24조∼25조원

삼성은 아직 확정짓지는 못했지만 올해 총 25조원가량을 R&D(연구개발 및 설비)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2005년 20조3000억원,2006년 20조9000억원,2007년 22조6000억원에 이어 다시 한번 '매머드' 급 투자를 통해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복안이다.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투자 규모를 지난해 10조8000억원에서 올해는 11조원으로 늘린다는 잠정 계획안을 내놓았다.반도체라인 증설에 7조원,LCD라인 증설에 4조원가량을 투입할 방침이다.

삼성은 경영환경이 정상화되면 신규 투자 확대와 함께 인수.합병(M&A)시장에도 적극 뛰어들 전망이다.삼성은 1994년 미국 컴퓨터업체인 AST를 인수했다가 실패한 이후 지금까지 'M&A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경영 원칙으로 삼아왔다.대신 핵심 인재 영입과 자체 기술 개발로 '독자적인 신수종 사업을 발굴한다'는 전략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전자가 이스라엘의 비메모리반도체 업체인 '트랜스 칩'을 인수하면서 사실상 이 원칙은 깨졌다.경제계에선 삼성중공업 등 다른 삼성 계열사들도 앞으로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그룹 경영진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M&A할 만한 기업이 있고,할 필요성이 있으면 언제든 M&A에 뛰어들 수 있다"고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