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가 정보최고 책임자가 불법적인 문건유출 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국정원의 대수술이라는 엄청난 후폭풍이 예고됐다.

당장 인수위는 "사의 표명으로 유야무야될 사안이 아니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정원의 조직 및 기능 축소 방침을 밝힌 가운데 터진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개편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현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내부 출신인 김만복 원장을 발탁,정보기관의 정치 중립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커졌다.

◆국정원 최대 위기

국정원 수장이 직접 문건유출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원은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다.국정원 관계자는 "정보기관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더구나 정권교체기에 터졌다는 점에서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침통한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 자체 조사에 따르면 김 원장은 지난 8일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과의 대화록을 작성한 뒤 이를 평소 친분이 있는 모 언론사 간부 및 국정원 퇴직자 14명에게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비록 비보도를 전제로 제공했지만 수십년간 정보기관에 몸담았던 김 원장의 처신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수차례 돌출행동으로 구설수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김 원장의 정치지향 성향과 돌출적 행동을 지적하고 있다.김 원장은 2006년 11월 취임 이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 해결,남북정상회담 성사와 '10·4'선언 도출까지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막후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에 따른 '돌출 행동'으로 구설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특히 역대 정보기관장과는 달리 아프간 인질석방 협상 당시 협상에 직접 참여한 직원과 함께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남북 정상회담 기간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면서 지나치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TV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아울러 고향인 경남 기장군 주민들을 여러 차례 국정원에 초청하고 지역행사에도 직ㆍ간접 참가한 사실이 드러나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올 4월 총선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도 낳았다.

특히 김 원장은 지난해 12월18일 평양을 방문해 김양건 부장과의 회담에서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실시되나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화해협력 기조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대선 결과와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을 예측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 13일 국정원의 조사결과를 보고 받은 뒤 김 원장의 거취에 대해 "책임있게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사실상 경질방침을 정했다.

◆차기 국정원 수장은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을 맡아 국정원 개혁을 담당할 인물로는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유력하게 거론된다.문민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안보통일보좌관을 지내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호남 출신이 요직에 많은 국정원 개혁에 적합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명박 당선인의 고려대 동기인 송정호 전 법무장관과 인수위 외교통일분과 위원인 현인택 고려대 교수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송 전 법무장관은 검사 출신으로 정보기관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현 교수는 이 당선인의 대북정책 브레인으로 북한 사정에 밝다는 것이 이유다.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도 유력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나 최근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당선인의 한 측근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이 당선인의 부정적 입장이 명확해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압축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역할축소 불가피

김 원장의 불명예 퇴진은 차기정부에서 국정원의 역할을 위축시킬 촉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인수위 일각에서는 벌써 지역별로 나눠져 있는 국정원 조직을 통합해 기능에 따라 조정하는 안이 부각되고 있다.현재 해외정보와 국내정보,북한정보 파트로 나눠져 있는 조직이 '통합정보시스템'의 틀 속에 융합될 경우 불필요한 기구가 대거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 및 정부기관 사정과 관련된 권한은 더욱 축소되고 해외경제 및 자원외교와 관련한 정보수집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점쳐진다.현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된 물밑작업을 주도하며 강화된 대북 정책기능 역시 외교부와 통일부로 대폭 이양하고 북한 관련 정보수집 기능에만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심기/노경목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