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B네트워크는 '아역배우 딜레마'에 시달리는 종목 중 하나다.

이는 아역배우 이미지가 워낙 강해 성인이 되어 달라진 역할의 모습이 쉽게 어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1981년 과학기술부 산하 신기술사업금융사로 설립된 뒤 메디슨 옥션 등 내로라 하는 벤처기업들을 발굴하며 '벤처투자 원조'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이게 걸림돌이 될지는 몰랐다. 2001년 코스닥시장 붕괴로 KTB는 보유한 벤처 자산들이 대부분 휴지조각으로 돌변,불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강남사옥을 매각해야 했다.


KTB는 이후 2002년부터 수익성 개선을 위해 단말기 제조업체인 큐리텔의 구조조정 업무를 시작하는 등 사모투자전문회사(PEF)로 업종 전환을 꾀했으나 '벤처캐피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이런 KTB가 올해는 확실히 PEF로 입지를 굳힐 작정이다. 김한섭 KTB네트워크 사장은 15일 "기존 벤처시장에선 한계를 느끼고 2004년부터 바이아웃(기업 인수 후 재매각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과 구조조정 분야에 매년 전체 투자자금의 80% 정도인 4000억원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중 해외에서 중국 사모펀드에 1억1000만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롯해 미국 베트남 등 해외에 총 2억1200만달러(약 199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운용 중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8조3000억원대 사모펀드 시장에서 KTB는 누적 출자액 기준 9801억원으로 MBK파트너스와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에 이어 3위에 머무르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 7000억원 규모의 실리콘웨이퍼 제조업체인 실트론을 인수한 것도 PEF로서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며 "국내 토종 금융사로서 단일 투자 규모로 7000억원을 넘긴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자평했다. KTB는 지난해 12월 보고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동부그룹이 보유한 실트론 전체 지분의 49%를 7097억원에 인수키로 본계약을 맺은 뒤 오는 2월까지 전체 지분 인수를 위한 후속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올해 대한통운 대우일렉트로닉스 현대건설 등 대형 인수합병(M&A) 매물이 줄줄이 나올 전망"이라며 "이번에는 KTB와 같은 국내 토종 펀드가 꼭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때 국내 금융사들이 대형 은행 등의 M&A건에서 제외된 것이 국내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김 사장은 최근 KTB의 증권업 진출설에 대해서도 "내년 초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IB(투자은행)로서 입지를 굳히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KTB는 2006년 한 해 당기순이익(216억원)보다 많은 순익(317억원)을 기록했다. 김 사장은 이 같은 추세라면 현재 8.9%인 ROE(자기자본이익률)도 올해는 10%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