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는 모델하우스를 늦게 여는 것이 관행처럼 돼 버렸다.정작 1~3순위 청약을 받을 때는 문이 닫혀 있다가 미분양 물량에 대한 이른바 '4순위' 청약을 위해 개장하는 것이다.지난해만 해도 예비 청약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고 청약 접수 1주일 전부터 모델하우스를 열어 분위기를 띄웠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처럼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3순위까지는 청약률이 '제로(0)'인 아파트가 속출하는 반면 청약 통장을 쓰지 않아도 되는 4순위 청약에는 신청자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이제 건설업체들은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3순위 내 청약은 아예 신경 쓰지 않고 4순위 청약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모든 물량과 인원을 동원해 '올인'하다시피하는 형국이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정상적으로 자격을 갖춘 3순위 내 청약자들은 모델하우스를 보지도 못하고 아파트를 신청하는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 됐다.게다가 4순위 당첨자는 추첨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이제 주택 분양을 운에 의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렇게 된 1차적인 이유로는 미분양 아파트의 급증이 꼽힌다.청약 통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원하는 아파트를 고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청약 제도가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주택공급 규칙에 따르면 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 내에서 순위 내 청약을 통해 당첨되면 5~10년 내에는 당첨자 본인(세대주)은 물론 가족들 모두 다른 아파트에 대해 순위 내 청약을 할 수 없다.나이 들어 청약 통장을 사용해 새 집을 분양받은 노부모를 세대주로 둔 아들과 딸은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얘기다.이러다 보니 통장 가입자들은 자신이 분양받고 싶은 단지라도 다른 가족을 위해서 함부로 통장을 쓸 수 없게 돼 버렸다.

새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를 주요 정책 과제로 내걸고 있다.차제에 3순위까지의 청약이 끝나야 문이 열리는 모델하우스에 긴 줄을 서야 하는 서민들의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임도원 건설부동산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