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궁핍했다.딸의 결혼 비용이 없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러시아 황제에게 팔게 됐다.새 주인이 된 예카테리나 2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책들을 파리에 그냥 두고 관리만 해 달라고 주문했다.장서 소유주였던 디드로의 위치가 일순간에 월급받는 사서로 격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침실 가운을 선물받았다.그는 그때까지 입던 낡은 가운을 과감히 버렸다.새 옷을 입고 느긋하게 서재에 앉았더니 이게 웬일? 그때까지 멀쩡하게 잘 쓰던 책상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었다.그래서 새 책상을 들여 왔는데 이번엔 책꽂이가 영 눈에 거슬렸다.새 책꽂이,그 다음엔 의자…. 결국 완전히 새로운 서재로 바뀌고 말았다.하지만 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고 한다.행복은 과연 물질과는 관계 없는 것일까.

'시간 돈 행복'(앨리슨 헤인스 지음,정나리아 옮김,용오름)은 가진 것을 즐길 줄 알아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이따금 생활의 속도를 늦추는 여유와 함께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버리면 얼마든지 행복해진다는 얘기다.

시간은 단순히 인생을 나누는 단위가 아니라 '삶의 질'이란 차원에서 접근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부자일수록 추가 수입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통해 행복은 과정이지 종착역이 아님을 밝힌다.

'많은 성인들은 운전대를 잡을 때 자유를 느낀다고 말한다.이때만큼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을 뿐더러 한 곳에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남자는 작업실이나 빈 방,주부는 욕실과 부엌이 자기만의 행복한 공간이다.청소년은 어른들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공원 같은 곳에 있을 때 주로 만족스러워한다.'

도심을 떠나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바닷가 오두막에서 남편과 같이 웃음 짓고 아들과 함께 해변을 걸을 때 인생의 경이를 느낀다는 저자.'찾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지킬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는 성경 귀절을 떠올리게 하는 삶이다.

427쪽,1만5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