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丙鍊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사상사 >

국민들의 기대 속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 환자에 대한 임상 기록을 연구하고 살피는 것이 필수이듯이 훌륭한 통치자가 되려면 정치의 임상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정치사를 귀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동양권의 정치적 정서에 비춰 볼 때 대통령 당선인에게 거는 국민 일반의 기대는 전통적 언어로 표현하면 '성군대망(聖君待望)'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왕조 체제에서는 군주의 몸과 행위에 대해 '성궁(聖躬)' '성은(聖恩)' 등으로 '성(聖)'이란 글자를 앞세워 수식했겠는가.

'성'은 사물의 이치에 '통(通)한다'는 의미와 '여러 소리를 잘 듣는(耳順)' '소리를 듣고 그 정을 아는(聞聲知情)' 것이라는 근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통치자의 지위에 오르면 소위 '잘난 인물'들로 주변을 채울 수밖에 없고,많은 경우 범상한 통치자는 그 '잘난 인물'들의 '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정치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는 공간 상으로도 국민과 가까이 있지 않다.

더욱이 여러 가지 의전과 회의 등은 대통령이 '아픈' 국민의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기도 한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고 소통시킨다는 의회와 언론도 그들만의 '관심과 문제'가 따로 있기 때문에 많은 국민의 다양한 '소리'는 선택을 거쳐서 이슈화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세종 대왕은 백성의 진실된 '소리'를 듣기 위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영조 대왕은 청계천 준설을 위해 직접 서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마음과 몸이 고요한 상태가 아니면 수많은 '소리'의 갈래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제갈공명은 바쁜 정무 중에도 사색하기 위해 별채 마당에 하얀 모래를 깔아 두고 사람의 출입을 금했다.

소의 헐떡이는 '소리'를 듣고 농사의 풍흉을 예견하고 대책을 세웠던 한(漢)나라 승상 병길(丙吉)은 '소리'를 잘 듣는 이름난 정치가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각고'하고 '분투'하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도 못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출 바탕은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잘 들을 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부터 통치자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진정으로 '아픈'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아픈 일'을 주제로 통치자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백성과 멀어지는 시초가 있었다.

백성으로부터 멀어진 군주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독부(獨夫)'가 되거나,민심과 동떨어진 '혼자 말하기'의 재미에 빠져 실패한 군주로 남게 됐던 것.옛날의 현인은 "제업(帝業)을 이루려면 현자를 스승으로 모셔야 하고,왕업(王業)을 이루려면 현자를 벗으로 삼아야 하며,패업(覇業)을 이루려면 현자를 신하로 두어야 하고,망국의 군주가 되려면 소인을 신하로 두면 된다"고 했다.

보좌진이 들려 주는 '소리'의 수준을 다스림의 성패와 연결시켰던 것이다.

스승과 벗은 백성의 '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소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리'를 굴절시키는 사람으로 사슴을 말이라고 하거나(指鹿爲馬) 언제나 '태평성대'라고 속삭이는 인물이다.

통치자는 수만 가지 '소리'에 둘러싸인다.

단소리보다 쓴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빈 마음을 유지한다면 하늘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볼 때 이 길을 벗어난 성군(聖君)과 현상(賢相)은 없었다.

'잘난 사람이나 집단'의 의도 있는 문제 제기나 칭송 속에 절박한 '아픔'들은 묻히기 십상이다.

아마 국민이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 가운데 하나도 진정으로 아파하는 '소리'를 잘 들어 주는 일일 것이다.

전통적인 '덕치'의 출발점도 별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성(聖)'한 통치자는 반드시 옛 시대의 기대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