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규모 외환보유액으로 메이저 금융사 지분투자 → 중국기업의 글로벌화 지원 → 중국전체 파워 업그레이드


중국 베이징 도심 톈안먼 서쪽 대형 현대식 건물들이 가지런히 들어선 진룽제(金融街).중국의 금융회사부터 내로라하는 글로벌 투자은행까지 몰려 있는 베이징의 월가다.

이곳에 있는 핑안다샤 7층 사무실은 요즘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가 2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맡길 운용사와 펀드 매니저를 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들고 몰려든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모인 100여개 글로벌 운용사 관계자들이다.

중국투자공사는 1조5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중국판 테마섹이다.

지난해 11월 공식 출범에 앞서 5월에는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지분 9.7%를 30억달러에 사들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작년 말엔 50억달러를 모건스탠리에 투자,지분 9.9%를 가진 2대 주주로 미국 월가에 입성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메이저를 꿈꾸는 '금융 중국'의 선봉장인 중국투자공사는 첨단 투자 기법을 가진 글로벌 인재를 모으며 본격적인 발진을 준비 중이다.

차이나 달러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의 근본 에너지다.

1조5000억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은 중국의 힘을 웅변한다.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순위 8위인 캐나다의 GDP(1조2200억달러.2006년 기준)보다 많다.

더 무서운 것은 빠른 증가세다.

무역 흑자는 작년 1~11월 2382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2% 폭증했다.

그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40% 이상 증가했다.

돈이 많다 보니 중국 기업의 IPO(기업공개)에 엄청난 자금이 몰린다.

지난해 IPO 규모는 610억달러.언스트 앤드 영은 그 규모가 올해 1000억달러 정도로 늘 것으로 내다봤다.

폭증하는 차이나 달러가 미국이 장악해 온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있다.

작년 5월 중국투자공사의 블랙스톤 지분 인수 이후 영국 바클레이즈그룹,미국 UCBH은행과 베어스턴스증권 등에 중국 자본이 잇따라 진입하며 주요 주주 자리를 차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작년 말 미국 모건스탠리가 50억달러를 중국투자공사에서 받은 것을 놓고 '월가의 자존심 위에 오성홍기(중국 국기)가 꽂혔다'고 표현했다.

세계 금융회사 인수는 중국의 글로벌화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금융회사 장악을 통해 세계 산업과 자원 시장을 간접 지배하겠다는 것"(박승호 중국삼성경제연구소장)이다.

중국의 이런 구상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 총재가 한 세미나에 참석,"중국의 은행들은 해외 은행을 사들여라"라고 공개적으로 지침을 내린 데서도 알 수 있다.

저우 총재는 "중국의 기업들이 해외 업체를 보다 쉽게 인수할 수 있도록 금융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은행들은 해외 금융회사를 적극 매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자원시장에서는 이미 차이나 블랙홀이 탄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5년 페트로차이나가 카자흐스탄 석유공사를 41억8000만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쓸어담고 있다.

베네수엘라와는 10억배럴 규모의 주마노 유전 등 15개 유전을 공동 개발 중이다.

최근 눈에 띄는 것은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의 자금과 대형 국영업체가 합작으로 해외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3위 철광석 업체인 호주 리오틴토 인수전에 중국투자공사와 4대 철강업체가 공동으로 2000억달러의 매입가를 제시하며 뛰어들었다.

캐나다의 오일샌드 채굴이나 중동의 유전 개발에 뛰어드는 등 해외 자원을 끊임없이 확보하고 있는 시노펙에 중국투자공사가 대규모 자금을 지원할 것이란 소문도 돈다.

중국 국토자원부 왕민 부부장(차관)은 지난해 국제광산업대회에 참석,"석유에서부터 각종 광물에 이르는 자원이 중국의 중요한 저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 대상"이라고 밝혀 끊임없는 자원 식탐을 드러냈다.

물론 차이나 달러의 위력이 일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투자공사의 자본금 규모가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의 25%에도 못 미치고 투자한다고 해도 경영권 인수가 아닌 일부 지분 확보에 그치고 있어 파괴력이 작다는 것.또 투자와 자금 운용 노하우가 부족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의 차이나 달러가 세계 금융질서의 중심부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작년 10월 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3881억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중국이 외환 다변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세계 금융시장은 거의 패닉 상태로 빠져든다.

작년 11월 청쓰웨이 전인대 상무부 위원장이 "외환은 강한 화폐로 보유해야 한다"고 발언한 직후 미국 달러화는 영국 파운드화에 비해 26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차이나 달러의 진군은 중국이 세계 경제질서를 바꿔 나가는 새로운 축으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특별취재팀:베이징ㆍ톈진ㆍ다롄ㆍ상하이ㆍ광저우ㆍ선전ㆍ충칭ㆍ우루무치=조주현 베이징 특파원/최인한/오광진/장창민 기자/김정욱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