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정문.검은색 카니발 차량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내리자 마중나온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 "어이고,오래간만입니다"며 손을 잡았다.

이 당선자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이 당선자는 옆에 있던 이윤호 전경련 상근 부회장에게도 "오래간만이네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같은 시간 전경련회관 20층 경제인클럽.이건희 삼성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전경련 회장단에 속한 주요 그룹 회장 등 20여명이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기업을 이해하는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모두들 고무된 표정이었다.

11시5분.당선자가 간담회장에 들어서자 20여명의 총수들은 일렬로 서서 당선자와 악수를 나눴다.

당선자는 처음에 한 명씩 악수를 하다 "왜 이렇게 줄을 서 계세요.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했고,총수들은 자연스럽게 타원형으로 둘러 서서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눴다.

당선자가 말한 "기업과 정부의 새로운 관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이 당선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오셨군요.

힘든 걸음 하셨습니다"며 손을 꼭 잡았고,김승연 한화 회장에게도 "봉사활동 하느라 바쁘시죠"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약간의 담소 후 간담회가 시작됐다.

조석래 회장이 앉은 채로 인사말을 했다.

조 회장은 "이번 대선 만큼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적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일자리 창출입니다.

이것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야 가능합니다.

시장경제 원칙을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해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기업들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앉아서 하시라"는 이윤호 부회장의 권유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선거가 끝나고 전경련부터 찾아왔다"는 말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따로 준비된 원고는 없었다.

이 당선자는 "글로벌 시대에 국내 기업은 외국과 경쟁한다.

따라서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규제하는 것이 맞다.

모든 정부가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규제 완화 건수만 따져서 완화의 효과가 없었다.

진정으로 기업이 원하는 규제를 풀겠다.

앞으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특히 "지난 6월 두바이 국왕을 만났을 때 국왕이 휴대폰으로 해외 투자자와 토론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다"며 "정부가 어떻게 하면 기업이 투자를 할지 얘기해 달라.나에게 직접 전화로 연락해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선자의 인사말이 끝나고 점심으로 일본식 도시락이 참석자들 앞에 놓여졌다.

시종일관 편안한 표정으로 이 당선자의 인사말을 경청하던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이명박 당선자가 당선된 것 자체만으로도 투자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들은 분위기만 조성되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며 "기업들의 활력이 크게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내년에 현대제철 5조2000억원,현대자동차 연구개발에 3조5000억원 등 그룹 전체가 11조원의 투자를 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투자 확대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전경련 신성장동력포럼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윤 삼양사 회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비즈니스로 포트폴리오를 개편하거나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신성장동력을 확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에 대한 주문도 쏟아져 나왔다.

정몽구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선 노사관계가 중요하다"며 "상생의 노사관계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총수들도 하나같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돼야 한다.

노사 모두 반대하고 있는 비정규직법은 빠른 시일 내에 개정되어야 한다"며 새로운 노사관계 확립에 힘써 줄 것을 당선자에게 주문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기업들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했으며, 최태원 SK 회장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해외 자원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가 경제외교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공장 총량제 등 수도권 규제가 외자 유치와 국내 기업 투자 확대에 걸림돌"이라며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수도권 규제를 없애는 추세인 만큼 획기적으로 수도권 규제를 정비해 달라"고 말했다.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지난 10년간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데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총수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분위기가 어떠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결같이 "매우 좋았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최태원 SK 회장은 "오늘 얘기가 잘 통했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이 당선자가 과거와 같은 정경유착이 아니라 이제는 정경이 함께 같이 가는 새로운 모습을 만들자고 했다"며 "지난 5년간 전경련을 포함한 기업인들이 대우를 못 받아왔는데 앞으로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