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들 만남이 잦은 12월이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졸업한 지 이삼십년이 흘러도 용케 연락이 닿는 것은 바로 인터넷 동창 찾기 사이트 때문이고,그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이제는 대중화돼 사이버 공간에서 옛 친구를 만나 반가워하는 네티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소식이 끊긴 지 오래인 친구와 흐뭇한 만남을 즐기는 네티즌 동창족들,이들은 곧바로 학창시절로 돌아가 버린다.

사느라 바빠 그토록 친했던 친구들도 잊고 살다가 만나니,많은 것들을 추억하게 만든다.

"얼마나 변했을까? 그때 한참 나를 좋아했던 걔도 나온다니 우선 반갑기는 한데 슬그머니 신경이 쓰이네.다들 어디서 살고 있는지,뭘 입고 나갈 건지,내가 너무 늙어서 나를 몰라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생기고…."

이런 저런 상상에다 쓸데없는 걱정까지 얹어서 동창회에 나가면 모두 달라진 모습들 앞에서 잊었던 퍼즐 조각들을 주워 모아 맞춰보며 그전에는 몰랐던 친구의 매력도 발견하고,사회적 지위 때문에 그런지 멋있어진 친구도 눈에 띄고,돈 많이 번 티가 나는 개기름이 질질 흐르는 친구도 보이고,여기저기 살짝살짝 고쳐 더 예쁘게 변신한 친구도 있다.

자신은 나이든 것 같지 않은데 깜짝 놀랄 정도로 늙은 친구도 있어 속으로 가여운 마음이 들지만 지나가는 행인이 본다면 도긴 개긴이다.

자신의 자화상이고 세월의 무게다.

하마터면 캠퍼스 커플이 될 뻔한 사이였으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헤어진 사람들은 오랜만에 동창회가 더 기쁠 수 있다.

그동안 어쩜 우연히라도 만나지 못하는 게 야속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동창회 사이트를 통해 예전의 그를 찾아다니고,친구의 친구까지 동원해 옛날 애인을 찾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는 외도를 미화한 드라마나 영화의 탓도 크지만,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인터넷 사이트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는 까맣게 잊을 수 있으나 과거 그 시절이 현재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들면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정서적인 퇴행을 겪을 수도 있다.

순수했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과거 사람과의 애틋한 사랑이다.

아련한 과거를 되새기면서 그동안 숨겨놨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걸 느끼며 자신의 이면까지 모두 알고 있는 과거의 그 사람 ○○앞에선 손쉽게 외피를 벗어 던질 수 있어 좋다.

그래서 그토록 그리웠던 옛 연인을 만나면 불붙는 건 순식간이고 그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진다.

프랑스 성직자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는 새로운 사랑은 묵은 사랑을 몰아낸다고 했던가? 자칫 송년회 한번 잘못 갔다가 바람이 나기 쉬울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부부 사이가 썩 좋지 않으면서 그냥 마지못해 살아가는 가면 부부일 경우에 동창 송년회는 쥐약이다.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새 연인을 만드는 불운한(?) 로맨스다.

현대 과학도 이 말에 동의하는데 다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속에서는 도파민과 좋은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다른 화학 물질의 수치가 올라간다는 것.

12월은 왠지 어수선하다.

젊은것들은 한 해가 가는지 오는지 별 개념이 없고 그저 신나게 즐기면 그뿐이지만,중년들은 지난 일년간 뭔가 해놓은 건 뚜렷이 없는데 그냥 한 해를 마감해야 하고 한 살을 더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기가 죽고 쓸쓸해진다.

부부가 냉랭했던 사이인데 아내나 남편이 뻔질나게 초등학교부터 대학 동창회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면 일단 긴장하는 것이 좋다.

그들이 뭔짓을 어떻게 했을지 모르므로….

그러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 맥놓고 있을 수만은 없고,살살 눈치를 보면서 뭐라도 해보는 거다.

화해의 제스처로 느닷없이 드라이브를 하자고 하든지 기차여행 티켓을 살짝 보여주자.

부부가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들뜨게 마련인데 가다가 휴게소에서 통감자랑 호두과자랑 우동을 먹어주고 보너스로 무릎팍에 손까지 얹어주면 진저리치는 짜릿함까지야 아니더라도 미소는 기대할 수 있으리라.

해넘이와 해돋이를 쌍으로 볼 수 있는 땅끝 마을로 직행한다면 섣달 그믐날 저녁에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새해 첫날 뜨는 해까지 맞이하게 된다.

떠날 때는 이심이체가 돌아올 때는 일심동체(?)로 바뀌지 않을까?

/한국성교육연구소 www.성박사.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