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를 팔며 배운 마케팅 기본기가 은행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다음 달부터 홍콩에 있는 HSBC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의 PB 담당 임원으로 일하게 된 김휘준 HSBC 전무(39)는 2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처음부터 자신을 '샴푸쟁이'로 소개했다.

HSBC 이전에 한국씨티은행에서도 일했지만 본인을 키운 건 샴푸기 때문이란다.

김 전무는 1997년 코카콜라 국내 판매법인인 건영식품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1999년 9월 '도브'라는 샴푸로 유명한 유니레버코리아로 일터를 옮겼다.

김 전무는 그때가 소비자 마케팅을 제대로 체험한 시기라고 회상한다.

"업계에서는 유니레버를 마케팅 아카데미라고 부릅니다.

그곳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 게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됐고 운이 좋아 실적도 올렸습니다." 실제 김 전무는 기존에 나와 있던 도브 비누의 순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도브 크림과 샴푸에 접목해 출시 6개월 만에 국내 판매량 2위에 올려놨다.

이후 마케팅 전문가로서 유명세를 타자 2001년 말 한국씨티은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에 김 전무는 "은행에서 나 같은 '굴뚝' 출신을 왜 필요로 하느냐"며 고사했지만 마케팅은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신용카드 마케팅을 담당하며 소비재 마케팅과 금융 마케팅의 차이를 터득해 나갔다.

그는 "샴푸나 콜라 같은 소비재는 트렌드에 맞춰 빨리빨리 새로운 상품을 내는 게 중요하지만 금융 상품은 고객 신용도와 리스크 관리를 함께 고려해야 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을 알아갈 때쯤인 2005년 김 전무는 HSBC에 새 둥지를 텄다.

HSBC에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어 서비스'를 정착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38세의 나이로 전무로 승진했다.

전무가 된 뒤 1년 만에 프리미어 서비스 분야 자산 규모를 세 배 가까이 늘려 HSBC 내 최고 인재그룹을 의미하는 'HSBC 글로벌 100 인재풀'에 선정됐다.

이어 김 전무는 HSBC 아태본부에 한국 교포 고객을 전담할 'PB 코리아데스크'를 신설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고 다음 달 전담 임원으로 부임하게 됐다.

김 전무는 "넓은 층의 소비자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산업 부문에서 마케팅의 기본기를 배운 게 오히려 비은행 출신으로 은행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기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홍콩에 PB 코리아데스크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에 PB 전담 본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