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라 브랠리는 8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텍사스공대와 서던메소디스트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로펌 루이스 라이스 앤드 핑거시에서 파트너로 일했다.

퇴근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문서를 집에 들고 오는 워커홀릭(일 중독자)이었다.

의료보험업계와의 만남은 1999년 우연히 이뤄졌다.

보험업체 라이트초이스와 헬스링크의 합병 과정에서 거액의 세금 분쟁을 맡게 된 것.비영리 건강관리기금을 설립해 세금 문제를 뛰어넘자는 그의 아이디어는 판결에서 거부당했다.

하지만 상대편을 거듭 만나 설득해나가는 그의 끈기와 논쟁력은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

당시 그를 지켜본 동료 존 라이플은 "연방정부와 검사 측은 협상 과정에서 오직 브랠리의 이야기에만 귀기울였다"며 "결국 브랠리는 죽어가던 딜을 살려내며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라이트초이스는 그를 놓치지 않고 전임 법률고문으로 기용했다.

2003년 브랠리는 라이트초이스를 인수한 웰포인트의 미주리 지사장에 올랐다.

2004년 경쟁사인 앤섬과의 합병 과정에서는 전공을 살려 각종 규제를 극복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를 유심히 본 래리 글래스콕 당시 CEO는 1년 뒤 브랠리를 인디애나폴리스의 웰포인트 본사로 불러들였다.

그는 웰포인트의 법률고문 겸 공보담당자가 됐다.

거기서도 뉴욕의 엠파이어블루크로스 인수 등에 기여하며 웰포인트를 업계 정상에 올려놓는 데 공을 세웠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업계 신인에 속했다.

올초 웰포인트가 차기 CEO 선정작업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브랠리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부에서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한 이사회가 내부로 시야를 좁히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사회가 세 아이의 엄마로서 CEO를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브랠리는 "아이들이 어린 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사회와의 다음 약속은 딸이 출연하는 연극 때문에 한 번 미루기까지 했다.

브랠리는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며 오히려 당당하게 임했다.

당시 선정작업에 참여했던 한 경영진은 브랠리에 대해 "진실성과 신뢰로 어필했을 뿐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능력도 뛰어났다"며 "무엇보다 그보다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이사회는 '공공 정책에 강하며 사사로움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선택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이변이라고 토를 달았지만 브랠리는 "그렇게 과민반응할 게 아니다"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는 성공의 열쇠를 소신과 자기 투자로 설명한다.

변호사 시절 그는 남자들이 대부분인 지역 스포츠클럽에 가입했다.

고객을 찾고 관리하는 데 그보다 좋은 취미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거의 유일한 여성 참가자였던 만큼 매년 올해의 여성선수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한 발짝 나아가는 데 주저한다"며 여성들에게 성별 구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여성에 대한 승진의 벽)을 깨고 여성 리더십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시대도 이를 받아들일 만큼 달라지고 있다고 낙관한다.

"여성들은 이제 모든 지위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이제 '우리가 간다'가 아니라 '여기 우리가 왔다'를 외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