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형(李 啓 炯) < 한국표준협회장 lgh@ksa.or.kr >

진시황은 기원 전 221년 39세의 나이로 중국을 통일했다. 비결이 뭘까. 석궁과 바퀴 간격을 표준화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크기와 성능이 천차만별이던 활 대신 같은 크기와 강도로 만들어진 석궁으로 중원을 평정했다. 그는 마차 바퀴 간격을 6척으로 통일하고 모든 도로에 레일 역할을 하는 바퀴자국을 만들어 적의 침입을 막았다. 로마 제국도 도로망과 수로시설을 통일해 번영의 기틀을 닦았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또한 필경사 2명이 5년 걸리는 성서 주석서를 일시에 표준화해 종교개혁을 앞당겼다.

표준의 위력은 2000년 후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타났다. 남북전쟁의 승리는 소총의 노리쇠와 방아쇠의 호환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군은 휘트니(Eli Whitney)의 표준 소총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링컨 대통령은 북군의 물자가 남군에 쉽게 넘어가지 못하게 철로의 간격을 넓히는 표준화 전략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기업의 성패는 표준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하는 제품이 시장을 확보한다고 알고 있지만,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표준을 선점한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P&G의 '팸퍼스'를 일회용 기저귀의 시초라고 생각하지만,사실은 이보다 30년 전에 나온 존슨앤존슨의 '척스'가 원조다. 최초의 온라인 서점도 '아마존'이 아니라,'찰스 스택'이었다. MP3 플레이어도 우리나라 '엠피맨'이 처음 만들었지만,후발 주자인 애플의 '아이팟'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질레트,휴렛팩커드,인텔,IBM,마쓰시타 등은 최초 시장 진입으로 성공한 기업이 아니다. 그들은 표준을 선점해서 새시장을 창조하고 명성을 얻었다.

각국은 표준을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제정ㆍ운영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제도,문화,관습 등 나라마다 고유한 특수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일사불란하며 미국은 자유분방하다. 일본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영국은 개념적이고 시스템적이다. 국가 표준은 주권 국가의 또다른 상징이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27조 2항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고 명시할 정도로 표준을 중요시하고 있다.

표준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지배하는 혼돈(chaos)의 세계를 확실하고 안전한 세계(cosmos)로 이끄는 안내자이자 혁신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표준이 없으면 시장은 무질서해지며,리스크와 사회적 비용도 높아진다. 표준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미래 사회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