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암(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앞으로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국민의 선택이 끝났다.

이번 대선은 정책선거가 실종되고 네거티브 공방이 심해졌다고 걱정들이 많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후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공약(公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성장동력 확충과 일자리 창출이었다.

민심은 더 높은 성장과 더 많은 일자리를 원하고 있었기에 후보들은 모두 지난 5년 간 성장 정체와 일자리 부족을 질타(叱咤)하면서 저마다 미래 고도성장 비전을 제시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요 후보들이 적어도 연 6% 이상 성장이 자신있다고 입을 모아도 경제 예측기관들의 내년 성장 전망치는 기껏해야 연 5% 수준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내년 세계경제전망이 너무 불투명하므로 올해보다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주요 후보들의 공약이 경제전망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불거진 신용경색 현상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세계경제가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후보들이 쏟아내는 신(新)성장공약이 내년 경제전망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실제로 경제가 나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전망을 고치겠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실시된 이후 제시된 비전이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다.

노태우 정부는 임기 말에 소위 '총체적 위기'를 맞았고,김영삼 정부는 임기 말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말에 '신용카드 대란'을 맞았고,노무현 정부는 현재 정책의 '신뢰성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처럼 임기 말에 국민들이 한번 더 했으면 하고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대통령이 없었다.

그러니 실제로 봐야 믿겠다는 분위기가 은연중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새 대통령은 임기 중 실적이 아니라 임기 말 실적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세로 일하면서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고 비전을 실현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현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 4%대 성장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로 받아들이고 연 5% 이상의 장기성장은 물가불안만을 조장할 뿐이라는 '4% 잠재성장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고 있으며,20대의 태반이 백수이고 45세가 정년이라는 '이태백 사오정' 현상이 지난 대선에서도 쟁점이 됐다.

따라서 지난 10년간 4%대 성장은 성장이 정체되었음을 나타낼 뿐 잠재성장률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성장전략은 임기 초에 투자를 살리는 정책과 지속적인 구조개혁 및 제도 개선으로 임기 말에도 성장세를 지속시키는 정책으로 나누어진다.

임기 초에 성장을 촉진시키는 정책은 전면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업가의 투자심리가 지나치게 위축되었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친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표명과 규제 완화,감세 등 몇 개의 핵심적 정책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성장세를 회복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도 정치적 리더십을 갖추고 임기 초 몇 개의 개혁조치를 단행함으로써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참여정부의 지나치게 비(非)시장적인 부동산 정책으로 2004년 이후 건설투자가 거의 얼어붙었으므로 수도권과 토지에 대한 규제완화와 더불어 건설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성장과 고용증대의 기폭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에 불을 붙이기보다 성장의 불을 꺼뜨리지 않기가 훨씬 어렵다.

성장세를 지속시키려면 구조개혁과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나 과거 정부들의 임기 초 개혁은 임기 말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내의 정치경제적 제약과 흡수능력을 감안하여 우리 토양에 맞는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지(衆智)를 모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