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유사한 수준의 저신용자에 대한 국내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3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아직까지는 대출 연체율이 낮아 위험한 상태는 아니지만 변동금리 대출의 비중이 높아 금리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저신용 담보대출비중 12~13%

신지선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 조사역은 12일 국제금융센터에 기고한 '한·미 주택담보대출시장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신용정보회사의 주택담보대출 차주별 신용등급 분포 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지난해 말 기준으로 볼 때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34조원으로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12~13%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금융회사별로 보면 은행권의 저신용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19조원으로 전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217조원) 대비 9% 수준이다.

반면 보험사 저축은행 등 비은행금융회사는 전체 주택담보대출(59조원)의 25.1%인 15조원이 저신용 주택담보대출로 추정됐다.

특히 저축은행은 저신용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4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들에게 나간 대출이 많아 부실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신 조사역은 "한국은 차주 신용도에 따라 분류된 주택담보대출 통계가 없어 미국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추정 결과를 보면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비중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현재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1조4000억달러로 전체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14%를 차지했다.


◆장기 연체 비중 높아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비중은 비슷하지만 연체율은 한국이 미국에 비해 훨씬 낮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의 경우 미국이 5.12%(올 6월 말 기준)로 0.9%(작년 말 기준)에 불과한 한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보고서는 한국의 연체율이 낮은 이유로 △담보인정비율(LTV)이 낮아 대출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거치식 또는 만기 일시상환방식 대출이 많아 매월 원리금 상환부담이 덜하고 △매매가 쉬운 아파트 담보대출이 많아 매각 등을 통해 쉽게 연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체율은 대출 취급 후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택담보대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시점이 얼마되지 않은 점도 연체율이 낮은 이유로 꼽혔다.

연체율은 낮지만 연체채권 중 90일 이상 장기 연체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50~70%)이 미국(19.4%)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연체율이 낮다하더라도 일단 연체 상태로 진입하면 담보대출이 정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더 낮다는 얘기다.


◆금리상승 땐 위기 가능성

보고서는 특히 "한국 주택담보대출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94%에 달해 금리상승기에는 가계 상환부담이 급증해 금융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리 상승폭에 상한을 두도록 유도하고,고정금리대출 유인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거치기간을 지나치게 장기로 운용하지 말도록 (금융당국이) 지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포스코경영연구소가 내놓은 '세계경제향방' 보고서도 "한국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금리인상 지속 등에 따른 시중유동성 축소가 현실화되면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