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은 유가와 환율 불안,금리 상승 등으로 내년 경영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고 '실탄'(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내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쉽지 않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해외 차입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는 등 내년 자금 수급계획을 꼼꼼히 다시 짜고 있다.

특히 올해 실적이 부진했거나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기업들은 내년 투자 및 사업계획을 재조정하고 있다.

자금 여유가 있는 기업들도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유동성 확보에 착수했다.


◆"금리 더 오르기 전에 현금 확보하자"

올해 반도체 경기 악화로 실적이 악화된 하이닉스반도체는 '현금 10억달러 확보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내년 상반기까지도 반도체 시황이 개선되지 않아 이런 상태대로라면 현금 부족분만 900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우려돼서다.

하이닉스는 이날 5억8340만 달러 규모의 해외 CB(전환사채)를 발행키로 결정한데 이어 청주의 8인치 웨이퍼 팹(공장) 장비 매각 등을 통해 추가로 5억달러 정도를 조달하기로 했다.

판매부진에 따른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기아자동차도 채권발행 외에 유휴자산 매각 등 강도높은 자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충남 서산산업단지 내 토지 93만412㎡를 계열사인 현대파워텍에 1153억원을 받고 팔기로 했다.

유럽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딜러망 확대와 마케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앞서 지난 8월에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했다.

GS그룹은 발빠르게 움직여 지난 3월 해외 채권을 발행을 통해 5억달러를 조달한 상태다.

지난달 무기명 무보증 사채를 1800억원 어치 발행한 대한항공은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 소재 주요 은행들로부터 상당액의 크레디트 라인(신용공여한도)을 확보했다.


◆"지금은 괜찮아도 내년에 대비"

삼성전자는 내년 투자를 위한 실탄 확보에는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국내 자금시장 경색 등의 상황에 대비해 비수익 자산 매각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의 9조원보다 크게 늘려잡지는 않을 방침이어서 현재 벌어들이는 이익으로도 충분히 커버할수 있다"며 "그러나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유휴설비 매각을 꾸준히 진행해 여유자금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도 당장은 현금이 부족하지 않지만 해외 공장 신·증설과 신차개발을 위한 대규머 투자가 내년 이후에도 지속돼야 하는 만큼 보유 주식 중 일부를 내다팔아 현금을 준비해둔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금리와 환율,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목표 유동성을 정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있다"고 말했다.

자금 확보보다는 부채비율 축소에 주력하고 있는 LG전자는 지난 4월 전북 군산의 군장산업단지내 토지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595억원을 받고 매각했고,9월에는 서울 가산동 토지와 건물을 505억원에 지주회사인 ㈜LG에 팔았다.

앞으로도 비업무용 토지와 빌딩 등을 내다팔아 재무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