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도쿄 남부 오다이바에 있는 도요타자동차 쇼룸.와타나베 가츠아키 도요타 사장이 신제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사장님 이쪽도 한번 봐주세요." 사진기자들의 주문에 와타나베 사장은 환한 웃음으로 응대했다.

여느 신차 발표회장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날 와타나베 사장 옆에 있던 신제품은 자동차가 아니었다.

로봇이었다.

손목과 손가락의 17개 관절을 섬세하게 움직여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로봇, 노약자를 편안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모빌리티 로봇 등이 도요타가 선보인 신제품이었다.

올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부상한 도요타는 미래 성장사업으로 로봇을 선정해 올인하고 있다.

자동차 조립 로봇을 만들며 축적해온 기술을 응용해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생활지원 로봇을 생산하겠다는 전략이다.

도요타는 2~3년 안에 실용화 테스트를 마치고 2010년대 초반엔 집안 청소를 도와줄 수 있는 로봇, 환자를 간병할 수 있는 로봇을 양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중 아이치현 자동차 공장 옆에 로봇 공장을 짓고,로봇 개발인력도 현재 1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시장을 제패한 도요타가 서둘러 '포스트(post) 자동차'시대를 준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선진국의 저출산 고령화로 자동차 수요가 줄면 자동차산업은 결국 사양산업이 될 것이란 위기감에서다.

고령화가 본격화된 일본 내에서 도요타의 자동차 판매는 이미 매년 10%씩 줄고 있다.

일본의 대표기업 도요타가 로봇으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한국의 대표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국의 대표기업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삼성전자다.

그러나 삼성은 요즘 '비자금 특검'으로 내년 경영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미래 사업 구상은커녕 당장 내년에 기존 사업을 줄일지,늘릴지도 판단을 못하는 상황이다.

특검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그게 현실이다.

삼성이야말로 차세대 성장산업 발굴이 절실한 회사다.

기자는 지난 7월 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회장을 인터뷰할 때 "삼성은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삼성이 지금까지는 산업 변화를 잘 타서 메모리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 등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이 3가지가 모두 변화가 심한 분야라는 게 문제다.

10년 뒤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바뀔지,휴대폰이 어떻게 진화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자동차에서 세계 1위가 되자마자 다음 카드를 준비하는 일본의 대표기업 도요타, 반면 미래 전략산업 발굴이 시급한데도 '과거'에 발목 잡혀 한발도 나가지 못하는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두 기업의 오늘이 두 나라 경제의 미래를 상징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도요타가 일본 경제에서 점하는 비중보다 2배 이상 크다는 점은 그런 우려를 더 크게 한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2006년 기준 4조3401억달러) 대비 도요타의 시가총액(10일 종가 기준 2038억달러)은 4.7%인데 비해 한국의 GDP(8880억달러) 대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977억달러)은 11%에 달한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