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7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에 대한 국회 처리가 올해도 어김 없이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겼다.

내리 5년째다.

법 위반 사태가 해마다 반복되다 보니 '연례 행사'가 돼버린 느낌이다.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예산 규모를 둘러싼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이견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5조원 삭감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를 반대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다.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인 신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 선거 이전에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을 하나라도 더 끼워넣을 수 있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반면 대선에서 승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은 대선 이후 예산안을 처리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12월 말에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새 대통령 당선자의 의사를 반영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온통 대선에만 몰입돼 있는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예산안 처리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에는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어겼지만 대선이 있던 해에는 11월 중 마무리했었다.

1992년에는 11월20일,1997년에는 11월18일,2002년에는 11월8일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대선에 휘둘려 예산안이 정략적으로 편성되거나 처리 지연으로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올해는 대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한 내 처리하지 못했다.

자칫하다가는 연내에도 예산안 통과가 안돼 사상 초유의 준예산을 편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중지되며,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정치권은 하루속히 예산안을 처리해 자신들의 '대권 놀음'에 국민만 골병드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강동균 정치부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