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 노스페이스 코치 와 같은 유명한 브랜드 매장 앞에는 줄이 한참이나 길다.
이들 매장의 당초 개장 시간은 자정.사람들이 몰려들자 앞당겨 문을 열었다지만 매장에 들어가는 데만도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몇 시간 뒤인 23일 새벽 맨해튼의 유명한 메이시백화점.늘어선 줄이 장관이다.
1000명이 넘어보였다.인파를 감당하지 못한 백화점은 계획(오전 7시)보다 이른 새벽 5시30분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뛰어다니고.미국 쇼핑객들은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블랙 프라이데이(balck Friday)' 새벽을 이렇게 맞았다.
소비자들이 밤을 새가며 쇼핑에 나서는 것은 파격적인 할인판매 때문.1200달러짜리 TV를 잘하면 300달러에 살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연례행사다.
그런데도 올 블랙 프라이데이가 유독 관심을 모았던 것은 미국 경제의 운명이 소비에 달려있다시피 해서다.
미국 경제는 주택경기침체와 신용위기,고유가로 신음 중이다.
소비마저 무너지면 '침체'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블랙 프라이데이의 매출이 예상을 상당히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참가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린 건 당연지사.어떤 전문가는 "소비자들은 불경기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소비의 나라다.
따지고 보면 블랙 프라이데이도 소비를 조장하기위해 소매업체들이 만들어낸 행사다.
업체들은 블랙 프라이데이가 지나자마자 또다른 세일을 시작했다.
연말세일 특가세일 회원세일 등등.마치 "이래도 돈을 안 쓸거냐?"고 협박하는 투다.
그렇다고 세일을 하지 않는 상품이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할인판매를 하면 팔리지 않는 상품도 부지기수다.
수백만달러 하는 브래지어나 우주여행상품도 없어서 못 판다.
비싼 맛에 명품을 찾는다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다보니 같은 품목에 대해 미국만큼 값이 다양한 나라도 없다.
자동차만 해도 수천달러짜리에서부터 수십만달러짜리까지 천차만별이다.
같은 동네에 있는 골프장이지만 그린피는 10∼200달러까지 다양하다.
한마디로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쓰고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쓰라는 식이다.
이런 소비조장 풍토가 그나마 미국 경제를 침체에 빠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국의 명운이 걸린 17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이번 선거의 화두는 '경제 대통령'이다.
새 정부가 탄생하면 국내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 붙었던 게 그동안의 경험이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서슬퍼런 정권 앞에선 돈을 쓰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그러다보니 정권 초면 으레 돈이 돌지 않고 경제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야단법석을 보면서 이번에는 "마음놓고 돈을 쓰도록 하겠다"고 공약하는 후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비록 '국민성공시대'니,'가족행복시대'니 하는 거창한 구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경제대통령감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뉴욕 하영춘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