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운(金膺運) < 한국외대 교수·정치학 >

결선투표 방식으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프랑스에서는 노조와의 대결을 '3차투표'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정권 초기마다 노조의 총파업이 정례화되다시피 했고 특히 우파정권에는 곤혹스러운 홍역이었다.

지난 5월 취임한 사르코지 대통령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운동 당시 이미 강도 높은 소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주창했던 만큼 노조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갈등을 빚게 될 것이 예견됐다.

공기업연금법 개혁은 노정(勞政) 전면대결의 첫 번째 계기를 제공했다.

다만 이번에는 대선 직후 역시 '3차투표'라 불리는 하원의원 선거를 치러야 했기에 이번 파업 국면은 '4차투표'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대치 10일 만에 파업을 철회하기로 한 노조의 결정으로 사르코지가 이 4차투표에서마저 승리자가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프랑스를 흔히 '파업공화국'이라 부를 정도로 노조의 힘은 막강한 것이었던 만큼 비교적 단 시일 만에 별다른 양보 없이 파업철회를 이끌어낸 사르코지의 통치력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프랑스의 오늘날 노조가입률은 주변 유럽국가들에 비해 전혀 높지 않은 편이며 파업의 빈도(頻度)에 있어서도 의외로 낮은 수준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지만 전후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는 경제성장기를 겪고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한 이후 노동자 의식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노조는,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인권 및 사회적 권리 신장과 국가사회의 독립 및 정치발전에 기여했던 화려하고 명예로운 과거의 유산 위에서,다른 한편으로는 소수 노조지도부의 민주집정제적 리더십과 파업주의적 전략을 통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1986년 시락 정권 하에서 약 한 달 간의 철도파업으로 프랑스국영철도회사(SNCF) 급여체계 개혁안을 철회시켰으며 특히 1995년 시락 대통령 재임 초기에는 약 70만 명이 참여한 한 달 간의 파업으로 소위 '쥐페안'이라 불리는 연금체제 개혁안 채택을 막아냈던 것이다.

12년 전 파업과 이번 파업의 계기가 됐던 것이 둘 다 공기업 연금체제 개혁안이라는 공통점,집권세력이 당명은 바뀌었어도 사실상 같은 정당이라는 점만 들더라도 이번 노정대결의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파업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들 수 있다.

사회적 명분을 갖추지 못한 채 집단이기주의적 주장을 내세우는 빈번한 파업에는 관대하고 사회적 의식이 높은 프랑스 국민들도 점차 식상해 했던 것이다.

자주 후원자가 돼주던 좌파정당마저도 이번에는 노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들도 공무원연금법이 하루빨리 개혁돼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프랑스 현 정부의 수장인 사르코지의 리더십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대통령선거에서 프랑스의 오랜 매너리즘을 퇴치하고 효율적이고 역동적인 개혁을 외치며 당선됐고 취임 후에는 여러 개혁안을 한꺼번에 풀어 놓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발휘해 왔다.

사르코지의 개혁방향은 영국의 전 총리인 대처와 유사하지만 그의 개혁속도는 대처보다 훨씬 빠르다.

노조에 대한 대응방식도 다르다.

대처 총리가 토라진 듯 노조 접촉을 회피했던 데 비해 사르코지는 비록 그녀처럼 국민여론에 기대어 파업을 비난하지만 동시에 노조를 접촉하며 개혁에 동참하라고 설득하는 태도를 보인다.

파업 재개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르코지의 개혁이 끝난 것도 아니며 다른 모든 개혁이 가능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장 국민 다수가 열망하는 서민의 구매력 향상이라는 공약을 실현해야 하는 점부터 쉽지 않은 과제다.

또 그의 개혁이 프랑스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 것인지도 아직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나라의 차기 대통령에게 필요한 그 무언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