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타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이 핵심 쟁점에 대한 큰 진전 없이 23일 끝나 협상의 연내 타결이 불가능해졌다.

양측은 내년 1월 6차 협상을 갖기로 하고 다시 수정된 의견을 주고 받기로 했다.

자동차 기술표준 문제는 한국의 제안을 EU가 즉각 거부하는 바람에 추가적인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EU는 한국이 패키지 형태로 제시한 상품양허(개방) 수정안에 대해서도 "과도하다"며 협상 내내 부정적인 반응으로 일관해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나마 성과라면 공산품 분야에서 품목별 협상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정도다.

◆3대 쟁점 입장차 확연

김한수 한국 수석대표는 이날 결산 브리핑에서 "현 단계에서는 상품양허,자동차 기술표준,원산지 기준 등 세 가지 쟁점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찾느냐가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자동차 기술표준은 한국에,원산지 기준은 EU에 각각 '공'이 넘어간 상태"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기술표준은 한국이 새로운 양보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고,원산지 분야에선 자동차 기계 철강 비철금속 화학 의류 등 한국의 관심 품목에 대한 EU의 전향적인 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특히 "최대 쟁점인 상품양허 분야에서 한국의 양허안에 대해 EU가 추가로 개선을 요구하려면 반드시 한국의 요구 사항을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한국의 양허안이 이제는 EU의 안보다 개방도가 높아 EU가 개선을 요청하더라도 해당 품목의 수는 적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전기.전자 등 한국의 관심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 시기 단축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자동차 분야 '빅딜'될까

다음 협상에서 양측이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자동차 분야에서 '빅딜'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양보할 수 있는 분야로는 자동차 기술표준 문제가 꼽힌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EU의 역내 제조 업체별로 한국 내 연간 판매량이 6500대 이하인 경우 한국의 기술표준 적용을 면제해주고 6500대가 넘더라도 5년간 적용을 유예할 수 있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EU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EU가 한국에 수출하는 자동차가 미국보다 월등히 많은데 한.미 FTA와 같은 수준의 안을 수용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가르시아 베르세로 EU 수석대표는 "자동차 비관세 장벽 해소 없이 전체 협상 타결은 어렵다"면서 "한국 측이 국내 협의를 거쳐 쿼터(업체별 대수 기준 기술표준 적용 면제)가 아닌 새로운 안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로 볼 때 다음엔 한국이 EU의 기존 자동차 기술표준 관련 제안(한국의 독자적인 기술표준 인정,UN ECE 기술표준 채택 차량 한국시장 진입 허용)을 수용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에서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한국은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를 기존 7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자고 요구했지만 EU는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과의 교역에서 연간 75억달러 이상 적자를 보는 EU가 자동차 관세를 조기 철폐하는 양보안을 내놓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럴 경우 협상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지부진하게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브뤼셀=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