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경(郭相瓊) < 고려대 명예교수·경제학 >

1990년대에 우리나라는 분별없이 과감하게 과잉 투자(주로 설비)를 했다.

과잉 투자는 과잉 부채를 유발했고 과잉 부채는 과잉 금융 부담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6ㆍ29선언 이후 지속된 고비용ㆍ저효율 속에서 과잉 투자를 유도한 정부의 빗나간 정책 때문이었다.

어제 우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만 10년을 맞았다.

이후 기업의 설비투자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R&D 투자로 경제를 활성화한 것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기업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줄곧 포퓰리즘으로 분배를 강조하고 서민경제 활성화를 내세웠다.

결국 경제는 활력을 잃고 침체에 빠져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말았다.

기업의 투자가 부진한 결과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투자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과잉 투자는 심각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주택의 과잉 공급)가 10만가구에 육박한다.

미분양이 수도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발생한다는 것은 아파트를 살 가정이 얼마나 되는지,아파트를 살 돈(소득)이 얼마나 있는지,아파트 수요에 대한 억제 정책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등 수요와 공급을 면밀히 분석하지 못했거나 안한 결과다.

미분양 아파트 문제는 1997년의 위기 때와 유사하다.

건설업체의 부도와 관련 금융회사의 부실금융 문제 등이 심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천을 비롯해 많은 지방에서 상업용 건물을 비롯한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경우도 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벌여놓고 보자는 허황된 과욕이 문제다.

외자(外資)를 끌어들이려 하나 실제로 성사되는 것은 별로 없다.

외국 투자자들이 수익성과 장래성을 분석해 볼 때 수요(경제성)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이 없는데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이미 완성했고 앞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곳곳의 지방공항도 유사한 공급 과잉 사례다.

청주공항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양양공항이 개장 휴업 상태에 있으며 수일 전 무안공항도 가동률이 극히 저조한 상태에서 개항했다.

보잉747기가 이ㆍ착륙할 수 있는 무안공항에 국내선 하나와 국제선(중국행) 두 개밖에 없다.

그 좁은 서남지역에 이미 세 개의 공항,특히 큰 광주공항이 있는데도 추가로 건설해 예산을 낭비한다.

연간 수백억원의 운영적자가 누적되면 정부는 수천억원의 적자를 감당해야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앞으로 수요에 대한 분석 없이 곳곳에 큰 공항을 계속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김해공항과 대구공항이 있는데도 영남에 큰 공항을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과잉 상태의 공항시설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근 신입생이 부족해 정원을 채우지 못한 많은 대학이 재정난과 교육 부실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대학이 과잉 공급이다.

대학 신입생의 감소 추세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허가해준 정부도 문제고 허가만 받으면 설립부터 하고 보자는 대학도 문제다.

과잉 공급 대학에서 부실한 교육을 받은 과잉 대학 졸업생도 문제다.

이들에 대한 수요를 무시하고 학위를 허가하는 교육부의 대학정책이 한심하다.

균형과 질적 향상에는 관심조차 없다.

바다의 심층수가 유망한 사업일 수 있다는 미확인 소문에 너무 많은 업자가 개미떼처럼 달려들고 있다.

일본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는데도 '묻지마' 행태다.

서비스업의 바닥 경제에도 수요 없는 과잉 공급 행태가 비일비재하다.

조정을 위해 강력한 시그널을 주고 조정을 행사해야 하는데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문제를 심화시키는 정부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기업에 대한 규제밖에 모르는 후진국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7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빚과 펀드에 올인하는 금융기관들,그리고 세계경제의 불안 요인 등을 놓고 볼 때 공급 과잉 문제가 나라경제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불안스럽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