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10년,직장인들의 정신세계가 불안하고 황폐해지고 있다.

각종 사내평가로 인한 압박감,직장 및 가족 구성원과의 불화,장래 비전의 부재로 화난 직장인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화 다스리기에 도움될 말을 오강섭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문병하 광동한방병원장으로부터 듣는다.

◆화와 분노는 뭐가 다른가

서양 정신의학에서 '분노'는 자기욕구의 실현이 무시 또는 저지당할 때 드러나는 저항과 부정의 감정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화'는 미국 정신의학회가 '화병'(火病)이라는 질병명을 공인할 정도로 개념이 단순치 않다.

화는 분노 불안 슬픔 공포 우울 걱정 수치심 죄책감이 뒤범벅된 부정적인 정서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응축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화병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분노(화)를 오랫동안 쌓아둠으로써 나중에는 감정적 자극이 없는데도 가슴답답함이나 입술마름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마음병이다.

한국인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울화병,한국민속증후군,분노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를 떠나 화를 풀어야 인생도 풀리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를 터뜨릴 것인가,삭일 것인가

미국에서의 연구 결과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사직할 확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또 심장마비나 협심증에 걸릴 위험이 3배나 높았다.

또 분노를 별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67%가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기상하는 반면 자주 분노하는 사람은 33%만이 비교적 좋은 기분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망치로 폐차 때려부수기,접시 깨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이벤트가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진정 화가 났다면 이런 행동으로 화가 풀릴 리 없다.

오히려 공격적인 반응이 학습되고 고착화될 여지가 크다.

한국사회가 지금보다 수직적 억압적인 시대에는 무조건 분노를 풀라고 권하는 정신의학자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논리는 수명을 다했다.

과격한 분노의 표출은 두고두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므로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인정받는 조류다.

일률적으로 화를 분출하거나 혹은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머나 자기의 욕구불만을 사회적 정신적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활동 등을 통해 보다 성숙하고 적절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화가 났을 때 남을 탓하거나 미워하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게 옳다.

타인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는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지만 이런 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며 대다수의 경우 오히려 화가 악화된다.

감정적인 판단을 지양하고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화날 때 어떻게 대처하나

가장 흔한게 술을 마시거나 줄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다사랑한방병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40%가 술로 화를 풀려 하고 음주자의 33%가 홧김에 술 먹고 뻗어버리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지나친 음주는 한방의 관점에서 몸에 좋지 않은 담화(痰火)나 습(濕)을 쌓이게 해 기혈의 흐름을 정체시키고 알코올중독 간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킬 수 있다.

흡연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줄여줄지 모르나 종국엔 담배연기 속의 니코틴이 혈관을 수축시켜 혈액순환을 저해하므로 스트레스가 더욱 쌓이는 결과를 낳는다.

화는 술과 담배로 다스려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심호흡 운동 수다 웃음짓기 긍정적 사고하기 등으로 정화될 수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분노로 화병이 심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개인적으로도 불안 우울 불면 소화불량 열감 오목가슴통증 등이 동반된다면 전문적 치료가 필요하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 약물치료와 함께 상담 및 인지행동요법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