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고 없는 것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난다(有無相生).'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 말로 '여백'의 또 다른 표현이다.

가야토기부터 고려청자,조선백자,정선의 산수화,박수근의 그림,백남준의 비디오아트까지 한국 미술에는 언제나 단아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묘미가 배어있다.

'여백의 미'를 끈으로 엮어 한국 미술사를 통시적으로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3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전이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해 '청자양각죽절문병(국보 169호)',통일신라시대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국보196호),김홍도의'송하맹호도','병진년화첩'(보물 782호),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보물 556호),추사 김정희의 예서 '죽로지실','백자달항아리'(보물 1424호) 등 고미술품 수작 28점과 박수근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백남준 서도호 김수자 등 쟁쟁한 근ㆍ현대 미술가의 작품 33점이 걸려 있다.

내년 1월2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연','자유-비움 그러나 채움','상상의 통로-여백'.'여백의 미'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3개의 전시실에 주제를 달리해 고미술품과 현대미술 작품을 세트로 배치했다.

전시공간은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건축가 승효상씨가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 가는 길을 연상하면서 꾸몄다.

관람객이 산책을 하듯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사방이 열린 공간이다.

'자연'이란 주제의 첫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합판 위에 인조 크리스털을 픽셀 삼아 인왕제색도를 재현한 황인기의 '방(倣)인왕제색도'가 마주보며 걸려 있다.

경계와 차이를 넘나드는 뭉클한 아름다움이 새어나온다.

오른쪽으로 한 발짝 옮기면 이기봉,배병우,권부문 등 사진 작가들의 풍경 사진과 장욱진의 '강변풍경',박수근의 '귀가',김수자의 영상작품 '빨래하는 여자-인도 야무나 강가에서' 등이 보인다.

이들 작품에선 비어 있지만 충만한 기운이 느껴진다.

'자유-비움 그러나 채움'이란 주제의 두번째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백자달항아리'(보물 10424호)와 달항아리를 유난히 사랑했던 화가 김환기의 뉴욕시대 푸른 점 그림 '하늘과 땅'이 한 방에 들어앉아 있다.

비우고 채워지는 자유,고요 속으로 스미고 배어드는 여유를 맛볼 수 있다.

'상상의 통로'인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조선시대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이 발길을 잡아당긴다.

요즘 유행하는 극사실주의 작품의 원조격이다.

또 한국 조각계의 큰 별 김종영의 1958년 작품,백남준의 명상적인 작품 'TV 부처'에서도 여백의 정취가 감지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준 삼성미술관 부관장은 "서구와 차별화되는 동아시아 미 의식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한국 미술에 있어서 여백의 조형적 의미와 비움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람료 7000원. (02)2014-690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