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暢賢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유명한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운영하는 제임스 사이몬즈 회장은 미분기하학을 전공한 수학자다.

그가 작년도에 받은 연봉은 1조6000억원(17억달러) 정도인데 헤지펀드 업계 1위이다.

그런데 그는 이 돈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는 데에 썼다.

미국 물리학 분야의 한 유명 연구소가 재원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이몬즈의 기부를 받아 고비를 넘긴 후 곧 정부 연구프로젝트를 수주해 폐쇄 위기를 넘긴 일도 있었다.

그는 또한 자폐증을 앓는 딸을 위해 상당한 자금을 자폐증 연구에 기부하기도 하고 그가 전공한 수학계에도 많은 기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금융 시장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린 후 이를 여러 통로를 통해 기초과학관련 분야에 기부함으로써 자국의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관련 분야에 기부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자본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자본가에게는 국경이 존재한다는 명제는 새삼 느껴 볼만한 대목이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금융감독 선진화 로드맵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국제화 지수, 곧 TNI 지수는 4.3% 정도다.

미국이 24.7%이고 네덜란드는 48.1%에 달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18개 은행 자산 총계가 1400조원 정도인데 씨티은행 한 개의 자산이 1750조원이다.

자산도 적고 금융국제화지수도 매우 열악하다.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매출은 1000억달러에 이르고 작년 수출규모가 500억달러 정도이니 이를 이용해 국제화지수를 대략 50% 정도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제조업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정체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은행산업은 이미 외국인 주주들이 상당 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84.5%이고 한국씨티은행이나 SC제일은행은 100%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나라 은행에 투자를 한 해외주주는 해당 은행이 국제적 영업망을 갖추는 부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 주주들 중에 상당 부분이 이미 해외영업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씨티은행의 주주인 시티코프는 이미 전 세계에 영업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 영업만 충실히 해 주주에게 배당만 잘 하면 된다.

더구나 상장까지 폐지됐으니 국내 주주가 숟가락을 올릴 일도 없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 바꾸면 달라진다.

국내 자본이 진출한 은행이 세계화전략을 실행해 이익을 늘리면 우리나라 주주들이 받는 배당수익이 늘어나는 등 상당한 소득이 발생한다.

우리 자본이 참여한 은행의 경우 우리나라 내부는 물론 해외영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국제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이미 수많은 국가에 진출한 700만 교포와 제조업체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다양한 영업이 가능해진다.

자산운용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사가 해외영업망을 확충해 자금을 끌어들이고 이를 국내 및 국외에 투자할 경우 우리 자산운용사의 브랜드가 국제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사모투자펀드는 어떤가.

많은 사모투자펀드를 설립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영업망을 넓히고 이익을 올린다면 이 역시 수많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다.

국내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서 이익을 내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보면 금융부문도 제조업처럼 수출과 해외진출을 통해 이윤기회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의 유휴자본이 금융산업에 진출하도록 유도하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진출 전략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최근 제조업의 이윤율이 서서히 하락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금융업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신규이윤기회가 창출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각종 방안을 모색할 때다.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