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금융 공기업들이 홍역을 치렀다.

과도한 복지와 임금ㆍ성과급 등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지적들이 많다.

이처럼 낯 뜨거운 행태는 주인 없는 회사에서 언제든지 빚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신이 내린 직장'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는 터에 확실히 잇속을 챙기자는 배짱인들 왜 생기지 않겠는가.

국민 세금과도 같은 돈이 줄줄 새는 것 이상으로 공기업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냥 놔두면 한없이 커지는 속성에 있다.

작년 말 공기업의 총 부채는 295조8243억원으로 2002년의 194조8985억원에 비해 51.8%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인력은 12.1% 증가했다고 한다.

앞으로 공공주택사업이 커져 토지개발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바빠지면 공기업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하다.

산은은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주식 처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증권시장의 '리바이어던(구약성서에 나오는 수중괴물)'으로 떠올랐다.

매각에 소극적인 이유도 다양하다.

하이닉스는 국가의 핵심 기술산업이기 때문이고 현대건설은 '구 사주 문제'등을 들고 나온다.

최근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을 핑계대고 있다.

그러면서 수십개 기업의 경영권에 음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1년 8월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대우해양조선은 사실상 산은의 자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산은 지분율은 31.3%로 1대 주주다.

지난달에는 대우조선의 34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600억원 규모의 상생펀드를 만들었다.

성장 가능성이 크지만 자금이 달리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저리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대상 기업을 대우조선 협력업체로 제한했다.

편법 자회사 지원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지분을 매각하면 3조원 가까운 차익을 거두게 된다.

김창록 총재는 이 돈을 투자은행(IB)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인 대우증권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자하길 원한다.

어떻게든 몸집을 불려야 IB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국고를 관리하는 재정경제부에서 흔쾌히 허락할 리 만무이지만 산은은 30조원에 가까운 보유 주식으로 어떻게든 사업을 확대할 게 자명하다.

김 총재가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밑그림을 한창 그리고 있는 사이 공공성은 갈수록 퇴색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공공성을 '보강'하고 싶었으면 산은 설립 목적에도 맞지 않는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데 그토록 공을 들였을까.

물론 산은도 부장급 이상 임직원이 참여하는 혁신워크숍을 갖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작년 3월에는 '산은이 망하는 시나리오'라는 집단 위기 프로그램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경영진이나 종업원들이 가지는 기회주의적 속성에만 기인하는 게 결코 아니다.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일반 국민을 대신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권력이 강한 의지를 갖고 민영화를 추진하거나 기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공기업 민영화 재추진이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이익원 경제부 차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