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분식(粉飾) 논란'이 일고 있다.

유례없이 많이 걷힌 국세를 적극 활용,예산안 여기저기를 보기좋게 꾸몄다는 것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팽창 예산' 논란을 의식해 정부가 고의적으로 불리한 수치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행 법률과 그동안의 관행을 따랐을 뿐이며 고의성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어떻게 분식됐나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11조원에 달하는 초과세수를 자의적으로 활용한 데 있다.

국채비율 계산 때는 초과세수를 활용,보기좋은 전망치를 내놓았으면서도 지출 증가율 계산 때는 이를 완전히 제외시킨 것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초과세수나 불용 등으로 발생한 세계잉여금을 지자체 교부금으로 우선 정산해주고,남은 금액으로 △공적자금 상환 △국가채무 상환 △추경 편성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획처는 지난 9월20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올해 초과징수되는 국세 11조3000억원을 △내년 지방교부세 정산에 4조2000억원 △올해와 내년 발행할 적자국채를 줄이는 데 각각 1조3000억원과 2조7000억원 △기존 채무를 갚는 데 2조8000억원(공적자금 상환 1조7000억원+기타 채무상환 1조1000억원)씩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이 집행될 경우 국가채무 비율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 것이라고 '친절하게' 전망치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총지출 규모와 증가율을 계산할 때는 4조2000억원에 달하는 지방교부금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년 증가율은 실제보다 그만큼 줄여 발표됐고 증가율도 9.6%가 아닌 7.9%로 낮춰 계산됐다.


◆재정수지 개선도 왜곡

재정수지 전망 때는 아예 초과세수 존재 자체가 묵살됐다.
[2008년 예산안 집중해부] (上) 정부도 분식? ‥ 불리한 수치 누락 의혹

초과세수를 감안하면 통합재정수지 흑자가 올해 25조2000억원에서 내년 15조1000억원으로 10조1000억원 줄게 되고,관리대상수지는 1조8000억원 적자에서 12조9000억원 적자로 11조1000억원이나 적자폭이 늘게 된다.

그러나 기획처는 초과세수 자체를 계산에 넣지 않아 통합과 관리대상수지가 내년에 각각 4조7000억원(12조2000억원→16조9000억원)과 3조7000억원(-14조8000억원→-11조1000억원) 씩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국책연구원 간부는 "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여기저기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경제성장률(경상기준) 전망치 7.4%를 뛰어 넘는 지출증가율(7.9%)을 둘러싸고 '팽창예산'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방교부금까지 합해서 전망치를 낼 경우 더욱 입장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한 것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또 다른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1993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추경을 편성하지 않아 올해 대비 내년 예산증가율이 더 높게 나오게 된 것도 정부가 지방교부금을 감안하지 않은 배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획처 "논란 소지 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적게 봐도 내년 증가율이 8.5% 이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8일 발표된 내년 예산안 분석보고서에서 내년 지방교부금 정산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지출증가율은 8.5%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송병철 경제예산팀장은 "국회에서 승인하지 않은 올해 지방교부세 정산분 1조4000억원을 뺀 예산 237조1000억원과 내년 예산 257조3000억원을 비교해야 맞다"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정부가 발표한 7.9%는 너무 축소된 수치라는 것이다.

내년 지출증가율이 너무 낮게 발표됐다는 지적에 대해 김대기 기획처 재정운용실장은 "그런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고의적으로 통계를 조작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인했다.

김 실장은 "지방교부세법 5조2항에 따르면 초과세수로 인한 교부금 정산은 내후년에도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때문에 정부는 내년에 지출이 확정되지 않은 지방교부금까지 예산으로 잡아 증가율을 발표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현행법과 관례에 따르면 예산증가율 7.9%가 맞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8.5%나 9.6%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