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Focus] 메릴린치 오닐 CEO 서브프라임 유탄 맞고 결국 퇴진
스탠리 오닐 메릴린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ㆍ56)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의 유탄을 맞고 퇴진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9일 보도했다.

오닐은 메릴린치가 지난 3분기 중 93년 기업 역사상 최대인 22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와코비아은행과 독자적으로 합병을 추진한 '괘씸죄'까지 추가돼 이사회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오닐은 지난 10월5일 3분기 적자 전망을 발표하면서 오스만 세머시 글로벌 채권부문 대표 등을 퇴진시키는 선에서 실적 부진의 책임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막상 3분기 결산을 발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만 79억달러로 당초 예상(45억달러)보다 34억달러 불어났다.

4분기에도 40억달러가량의 손실 처리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그러다보니 오닐의 위험관리 능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오닐이 이사회와 협의하지 않고 와코비아은행과 합병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더 이상 버틸 명분을 잃고 말았다.

오닐은 흑인 최초로 월가 CEO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월가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는 앨라배마주 웨도위라는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노예였던 만큼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10대 때 아버지를 따라 제너럴모터스(GM)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그의 천재성은 GM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GM은 그를 일종의 사내대학인 GM연구소(나중에 케터링대로 개명)에 입학시켰다.

그 후 하버드대에서 MBA를 따면서 그는 인생 반전의 계기를 잡는다.

하버드대 졸업 후에도 GM에서 일하던 오닐은 1986년 메릴린치로 옮겨 승승장구하게 된다.

마침내 2002년 12월 CEO 자리에 올랐으며 다음 해인 2003년 4월에는 회장도 겸하게 됐다.

CEO가 된 오닐은 주식중개 위주의 사업구조를 개편,메릴린치를 국제 투자은행으로 발돋움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실적에 지나치게 집착해 "고위험 사업에 대한 투자 위험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를 지시했다.

덕분에 메릴린치는 작년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오닐도 4800만달러의 연봉을 챙겨 월가의 대표주자로 우뚝 서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적극적인 투자전략이 부메랑이 돼 날아들고 말았다.

오닐의 퇴진은 모든 걸 실적으로 말하는 월가의 생리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미 월가 금융회사의 상당수 채권담당 대표들은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들을 희생양으로 자리를 유지하려던 CEO들의 입지도 오닐의 퇴진으로 더욱 흔들리게 됐다.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57%나 감소한 씨티그룹의 찰스 프린스 회장 겸 CEO도 퇴진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서브프라임 파문의 시발점이었던 베어스턴스의 제임스 케인 CEO에 대한 퇴진설도 계속되고 있다.

만일 서브프라임 파문이 지속될 경우 자리를 내놓는 경영진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월가에는 이래저래 시련의 계절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