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다산칼럼] 선조들은 愼獨하라 가르쳤는데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金炳椽 <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1990~1997년 영국의 총리였던 존 메이저는 깨끗하고 청렴한 이미지,젠틀맨 같은 인상 덕분에 총리가 된 사람이다.

    그의 말은 절제돼 있었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그의 행동은 특히 서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런던에서 나무 상자 위에 올라가 연설하던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에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존 메이저는 큰 업적을 낸 총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임기동안 영국경제는 유럽에 비해 침체돼 있었다.

    1992년 영국이 파운드화에 대한 투기 공격을 견디다 못해 유럽환율 메커니즘을 탈퇴할 때 많은 영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각료들의 스캔들과 갈등은 그의 직무수행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또 보수당 내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던 전(前) 총리 마거릿 대처는 그녀와는 달리 유럽연합에 우호적인 존 메이저를 마냥 흔들어댔다.

    존 메이저가 끝까지 지킨 것이 있다면 말을 아낀 것이다.

    정확히 말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개인을 극렬한 용어를 써서 비판한 적은 없었다.

    암암리에 그에게 도전하기도 했던 각료와 의원들에게 한 말은 기껏해야 "공개적으로 총리직에 도전하든지 아니면 입을 다물어라" 정도였다.

    영국의 절제된 언어문화 덕분에 메이저 자신도 덕을 봤다.

    메이저 정권의 모토는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s)'는 것으로,정직을 강조하고 가족을 중히 여기는 이미지가 정권 창출과 유지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메이저 자신은 총리가 되기 전 4년 동안 동료 보수당 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총리에서 물러난 후 밝혀진 이 스캔들에 대해 영국의 유명한 상원의원의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여성관에 일시적 착오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와 같이 비난에도 품격이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말의 폭력이 난무할 때가 많다.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골라 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래야 직성이 풀리고 통쾌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나 말의 품격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막된 말과 함부로 비난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좋은 생각,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어렵다.

    오히려 말을 통해 상처를 주고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혹독한 독재를 극복하는 민주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우리가 쟁취한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없지는 않다.

    당시의 폭력적인 권위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쓴 말들에는 폭력적인 단어가 많았다.

    '타도하고 죽이고 깨부수고' 등의 용어가 너무 흔하게 사용됐고 전파됐다.

    이러한 극단적이고 극렬한 용어들은 지금도 집단 사이의 갈등 등 여러 상황에서 분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아이들도 이러한 폭력적인 언어에 오염된 채 자라게 된다.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문화를 파괴하고 아이들의 심성을 황폐화시키는 문화범죄자인 셈이다.

    어느 누구보다 지도자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배우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혼자 있을 때 스스로에게 하는 말도 삼가라며 신독(愼獨)을 강조했다.

    설혹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해 부부간에나 막역한 사이에서 자기들끼리 남을 비판하는 말을 하는 것에는 어찌하랴.그러나 공개적으로,다른 사람들이 듣는 자리에서 자극적이고 극렬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

    현대 경제는 문화자산이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며 말의 품격은 바로 문화 수준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언어에 품격을 갖추지 못한 지도자,말에 절제가 없는 지도자는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을 낮출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도 방해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 먹고 살기가 어려웠고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존 메이저도 힘든 소년기를 보냈고 그도 16세에 학교를 떠난 사람이지 않은가? 이왕지사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뽑을 사람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프랑스, 숫자와 문자의 나라

      어렸을 때 자주 보던 ‘숫자와 문자’라는 인기 퀴즈 프로그램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주어진 숫자와 문자에 따라 암산과 철자 문제를 풀며 대결을 펼친다.한국에서는 프랑스를 숫자보다는 문자의 나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프랑스가 위대한 문학과 방대한 예술 유산,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와 토론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프랑스는 숫자에서도 뛰어난 과학 강국이다. 73명의 프랑스 노벨상 수상자 중 42명이 과학 분야 수상자이다. 프랑스는 주요국 중 인구 대비 과학 부문 노벨상 및 필즈상 수상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다.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자 두 개의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과학자도 프랑스인 마리 퀴리 부인이다. 거의 매년 최소 한 명의 프랑스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데, 2025년도 예외가 아니었다.프랑스는 모든 분야의 기초 및 응용 연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수학과 양자물리학 분야의 프랑스 학파는 명성이 높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그리고 여러 테크 분야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프랑스 이공계 졸업생들을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프랑스의 과학적 우수성에 주목한 한국의 선택은 옳았다. 한국의 고속철도는 당시 알스톰사가 보유한 기술 도입으로 가능했고, 한울 원자로 1·2호기 건설은 프라마톰과의 협력으로 완성되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 최초로 에어버스 항공기를 도입함으로써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대기업 간의 협력뿐만이 아니다. 한국에 진출한 많은 프랑스 스타트업들도 다양한 기술 발전과 지식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한국의 위대한 산업적 성공 중에는 프랑스

    2. 2

      [서정환 칼럼] '코스피 5000시대' 금투협회장

      국내에 업종·업권 관련 협회는 수천 개에 이르고 법적으로 특정한 권한을 가진 협회만도 수십 개에 달한다. 증권·금융업계에도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증권금융 등 10여 개 법정 단체가 있다. 대부분 회장 선임 과정에서 당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관치의 영역’에 있지만 예외적인 자리가 하나 있다. 바로 금융투자협회장이다. 금투협 회장은 399개 회원사, 5만5000여 명의 종사자를 대표하는 조직의 수장이다. 지난해 연봉만 7억원이 넘고 퇴임 후에도 2년간 고문을 보장받는 자리에 개입이 거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외일 정도다.물론 처음부터 ‘무풍지대’였던 것은 아니다. 전신인 증권업협회 시절에는 유력 장관의 측근이나 관료 출신이 회장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2001~2004년 증권협회장을 지낸 오호수 회장은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였다. 하지만 출범 50년 만인 2005년 경선 방식이 도입되고 2009년 증권·자산운용·선물 등 3개 협회가 통합해 지금의 금투협이 출범하면서 ‘관치 관행’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12년 2대 회장 선거 당시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낙점설’이 돌던 재경부 세제실장 출신인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을 제치고 우리투자·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한 박종수 회장이 ‘깜짝’ 선출된 사건은 일대 변곡점이었다. 바로 직전인 2022년 12월 선거에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고교 동문인 모 증권사 사장 출신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있었으나 결선 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서유석 현 회장이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이런 ‘관치 무력화’의 배경

    3. 3

      [천자칼럼] '환단고기' 소동

      인종주의 광풍이 거세게 불던 나치 독일에선 ‘5000년 독일사’라는 문구가 유행했다. 2000여 년 전 로마와의 접촉에서 시작하는 통설을 제쳐놓고 자국사의 출발점을 별다른 근거도 없이 훌쩍 끌어올렸다. 나치 실력자 하인리히 힘러는 ‘위대한 아리아 인종’의 근원을 찾겠다며 티베트로 대규모 탐사대를 보냈다. 기원이 오래될수록, 영토가 넓을수록 민족사가 더 빛날 것이란 생각 탓에 근대 역사학의 탄생지 독일은 역사 왜곡의 난장판으로 전락했다.‘영광스러운 과거’는 종종 비루한 현실을 잊게 한다. 콤플렉스 가득한 사회일수록 판타지 같은 옛이야기에 더 집착하는 이유다. 일제의 지배와 6·25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 세대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979년 단군교 계통 태백교라는 종교 창시자로 알려진 이유립이 <환단고기>라는 책을 썼다. 그는 한국사의 시작점을 기원전 7199년까지 끌어올렸다. 한국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뛰어넘는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한반도와 만주, 중국부터 중동까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종족으로 한민족을 그렸다.지난 40여 년간 <환단고기>는 대중은 물론 문화계, 정계 등에 스며들며 여러 부작용을 빚었다. 역사학자 중 ‘영광스러운 민족사’라는 대중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이는 ‘식민사학자’로 매도됐다. 통설인 낙랑군 평양설에 기반해 책을 냈다는 이유로 미국 하버드대가 진행하던 ‘고대 한국사 프로젝트’는 자금 지원이 끊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연설문에 ‘역사는 혼과 같다’는 <환단고기> 구절이 등장했고, ‘동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