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한 언젠가는 그것을 성취할 때가 반드시 온다.

뭘 상상하죠? 네가 말한 선함과 친절함,짐승적인 것의 종식.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뭘 할 수 있죠? 그 꿈을 버리지 않는 것,그 꿈이 살아있게 하는 것." 소설 '황금 노트북'에 나오는 주인공과 친구 아들의 대화다.

'황금 노트북'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88)의 대표작이다.

부제는 '자유로운 여자들'.안나와 몰리라는 두 여성의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은 사소설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이념과 사회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다룬다.

레싱은 삶 자체가 서사극같은 여성이다.

영국인이지만 이란에서 태어나 5살 때 아프리카로 이주했고 가난으로 13살에 학교를 그만뒀다.

15살 때부터 타이피스트 등으로 일하다 19살 때 결혼,아이 둘을 낳고 이혼한다.

재혼하지만 다시 이혼한다.

그런 다음 런던에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레싱은 두번째 남편의 성(姓)이다.

굴곡 많은 인생 여정과 제3세계에서 보고 겪은 일들의 영향일까.

그의 작품은 사소설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황금노트북'만 해도 여성문제를 근간으로 하되 공산주의를 비롯한 하나의 이념이 어떻게 탄생되고 소멸되는지,그것이 보통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날카롭게 파헤친다.

노벨문학상은 오랫동안 남의 잔치같은 것이었다.

우리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한국문학번역원이 출범한 2001년부터.최근엔 고은씨를 비롯한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매년 1월 말까지 올라가는 후보자 명단에 들어있는 까닭이다.

일본에선 두 번이나 수상한 노벨문학상을 한번도 못받는 가장 큰 이유는 번역 문제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작품의 내용이다.

민족과 국가,시대를 넘어 읽히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때 노벨문학상은 의욕이나 허상이 아닌 실체로 다가설 수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