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은 약간 지친 기색이었다.

이날 프랑스에서 날아와 바로 대구 영남대 60주년 행사에 참석,세계화를 주제로 특강을 한 직후 KTX를 타고 서울로 오는 강행군을 했기 때문. 30분가량 휴식을 취한 뒤 대담장에 나타난 그는 그러나 대담이 시작되자마자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영남대 학생들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얼굴에 홍조마저 띠었다.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입니다.

"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장과의 이날 대담에서 기 소르망은 무엇보다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3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정치,경제,문화 부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며 "딱 한 가지 정체된 부문이 교육"이라고 힘줘 말했다.

대담=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장

―지난 5월 프랑스에서 우파 성향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한국에서도 곧 대통령 선거가 치러집니다. 한국의 다음 대통령 후보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할까요.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정치는 민주화됐고,경제는 세계 12위 규모이고,문화 면에서는 동아시아에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지요. 문제는 고등 교육의 질이 낮다는 겁니다."

―차기 대통령은 '교육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한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낙후돼 있죠. 선진적이지 못합니다. 캠퍼스도 보수적이고요. 창의적인 대학생을 양성하려면 캠퍼스에 젊은 아이디어가 살아 넘쳐야 합니다."

―한국 교육 정책의 기본 철학은 자율과 경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이른바 '3불 정책(기부입학제,고교등급제,본고사 금지)'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본 정책과 어긋나 있다고 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런 제도가 왜 필요한가요'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대학을 통제하려는 발상이 우습다고 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대학들이 학생의 경제 사정에 따라 등록금을 다르게 부과하는 '등록금 차등제' 도입 논란이 있었습니다.

"교육은 곧 투자입니다. 등록금 자율화가 당연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자유를 줘야 합니다. 사립대들이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야죠."

-등록금 정책이든 다른 정책이든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교육열은 엄청납니다. 미국 유학에 쏟아부을 돈을 국내에 투자하세요. 한국 사람들은 교육에 돈을 투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메르켈 독일 총리,그리고 브라운 영국 총리도 교육 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세계 일류 대학은 죄다 미국에 있습니다. 이유가 있죠. 유럽 대학에는 경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 대학이 학생 한 명에게 1년에 4000만달러를 투자한다면,유럽 대학은 10분의 1인 400만달러를 투자합니다. 미국 대학의 투자는 믿기 어려울 정도죠."

―미국 대학의 장점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요.

"미국 대학 캠퍼스는 살아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나지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도 대학 캠퍼스에서 우연히 탄생했습니다. 결국 '이노베이션(혁신)'이 핵심입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같은 캠퍼스의 혁신이 기업과 연계된 것도 큰 장점이고요."

―21세기에도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미국 대학의 경쟁력 때문입니까.

"첫째는 금융 경쟁력입니다. 미국은 주식으로 돈을 매우 잘 벌고 있죠. 비록 달러화가 약세이긴 하지만 미 달러화는 강력한 자산입니다. 다음 미국 대학의 경쟁력을 꼽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리얼 타임'으로 산업화될 수 있는 곳이 미국 대학입니다."

―중국과 인도에 대해서도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중국과 인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요.

"중국과 인도는 연 9~10%라는 높은 성장률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크죠. 먼저 인도는 나름대로 균형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사회적 격차가 커 불안정한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을 추격할 것이라는 전망이 큰 의미가 없는 이유입니다."

-중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안티 차이나(반 중국)'는 아닙니다. 다만 중국이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중국의 발전엔 운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덩샤오핑과 같은 뛰어난 리더가 있었고,중국의 값싼 상품을 소비해 주는 미국 소비자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뛰어난 리더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미국 소비자들이 계속 소비를 늘려 중국 소비재를 쓸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다시 프랑스로 화제를 돌리면,프랑스 국민들이 오랜 사회주의 관행을 깨고 보수 정당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뽑은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위기 의식이 팽배했어요. 젊은이들은 직업이 없고,경제는 침체됐죠.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각성이 여기저기서 있었죠. 우리는 보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독일에 이어서 프랑스 국민들도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일자리가 나라 밖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유럽도 자유 시장에 관한 아이디어를 인식하기 시작했죠. 사회 곳곳에 보다 많은 경쟁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자유 시장을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사르코지의 개혁이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나요.

"현재 두 가지 모순되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기존에 유럽 사회가 추구했던 사회주의적인 가치와 자유시장적 가치는 어느 정도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독일 메르켈 총리의 개혁은 현재까지 성공적입니다. 독일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지요. 프랑스 국민들도 사르코지의 개혁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끝으로 프랑스에서도 지한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를 계속 낙관합니까.

"물론 도전은 있을 겁니다. 그런 도전은 어느 국가에나 있죠. 중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도 압박합니다. 한국은 인재가 많으니 교육 시스템만 바꾸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성선화/김영우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