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바람을 타고 오르는 새 깃털로 시작해서 마침내 땅에 내려 앉는 장면으로 마감한다.

한참 바람을 타고 하늘을 오를 때에는 깃털의 놀라운 부력(浮力)이 영원토록 지구 중력의 법칙을 무시할 듯했다.

현실 세상은 그렇지 않다.

반(反)부패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청렴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작년보다 한 단계 떨어져 49위였다.

한국의 5.1점(10점 만점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평균 7.18점보다 훨씬 낮을 뿐 아니라 싱가포르,홍콩,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도 크게 뒤졌다.

2002년 말 대선 당시 야당의 '차 떼기' 비자금 비리를 지탄하며 남다른 청렴과 개혁의지로 똘똘 뭉쳤노라는 세력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집권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개혁'조치들이 남발되었건만 정권 말기에 이르러 청렴도가 오히려 혼탁해졌음이 입증되고 있다.

그것도 일선 민원부서가 아니라 청와대,기획예산처 같은 국가권력의 핵심이 비리 의혹의 중심이 되어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 정부만큼 인재 등용에 유별나게 까탈스러운 정부도 드물었다.

음주운전 등 해묵은 작은 비행(非行) 전력자에게는 엄정한 듯했다.

반면 지난날 국가질서 문란사건 연루자에게는 호의적이었다.

과거와의 단절을 강요한다는 구실로 무경험을 참신성으로,비리 노출기회 없었음을 청렴성으로,현실과의 괴리를 개혁 성향으로 인식하는 게 인사 기준인 듯했다.

굳이 현정부만의 관행이 아니겠지만 특정지역 특정고교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했고,지역균형발전 슬로건은 헛도는 말 잔치였음이 드러났다.

필자와 잠시 사제관계였던 변양균 전 실장은 원래 무리하지 않는,세심한 관료였다.

신정아씨도 본심이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변ㆍ신 두 사람을 만나게 하고 변신(變身)ㆍ변모(變貌)하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깃털이 하늘을 날게 하는 부력은 바람이 제공한다.

사람의 발을 땅에서 부양시키는 힘은 권력이라는 괴력(怪力)이다. 청와대라는 권력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멀쩡한 사람도 자제력과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모양이다. 경제각료의 본직은 국가의 유한한 자원 제약을 인식하도록 권력자에게 수시로 일깨워 주는 악역을 담당하는 일이다. 악역을 접고 권력에 순치되는 순간 장기간 쌓아 올린 관료경력의 공든탑은 봄눈처럼 녹는 법이다.

2002년 대선 직후 반대표를 찍었던 다수 국민들도 신(新)정부에 기대를 걸었었다.

그것은 무경험 민주세력들이 현실세계의 제약과 가능성에 눈을 뜰 만큼 영리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직업관료들에 의한 중도적 교육효과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권세력들이 지나치게 아집을 앞세운 나머지 총명할 수 없었고,관료들은 높은 자리 유혹에 마비돼 오히려 피교육되는 나약성을 드러냈다.

모든 자원은 유한하다.

시간이라는 자원 역시 유한하다.

아무리 대못질을 한들 시간의 흐름과 정권교체를 막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좋다는 것은 정권에 임기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개입돼 흥미를 돋우지만 따지고 보면 변ㆍ신 두사람 사건보다 정윤재씨 사건이 더 중대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은 권력이란 바람에 날리는 깃털일 뿐이다.

깃털만 보고 바람의 실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차기 정권에도 깃털 비행이 얼마든지 재발될 것이다.

민주주의 릴레이게임인 바통터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차기 정권과의 연대와 분업을 고려해야 한다.

국정(國政) 지상목표가 경제성장,적정분배,국가안보,남북경협의 어느 배합을 선택하든 간에 시간에 걸친 국정의 일관성과 분업을 유지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국정운용에 각 분야 전문가를 중용해야 하고,관료들은 나름대로 고슴도치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권력 앞에 주눅 들어 가시 털을 접고 함함하기로 작정한다면 이미 고슴도치가 아니다.

깃털을 날리는 바람의 실체를 제대로 밝힐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