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 '족쇄' 풀때 됐다] 연천 98%ㆍ철원 100% 군사보호구역‥ 軍 동의없인 소방서ㆍ병원도 못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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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든,개인이 하는 사업이든 개발 계획을 세우는 걸 볼 때마다 '그렇게 많은 규제를 어떻게 뚫으려고…'하는 걱정부터 앞섭니다."(김규배 경기 연천군수)
"고속도로가 없는 지역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여기가 이름만 수도권일 뿐 바로 그런 오지예요.
큰 공장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습니다."(경기 접경지 주민 김규종씨)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은 한결같이 각종 '규제' 때문에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안보상의 이유로 반세기 넘게 피해를 감내해온 만큼 보상 차원에서라도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을 쏟아냈다.
◆무산되는 개발 프로젝트
강원 철원군이 명지대재단과 함께 철원군 갈말읍에 추진해온 명지리조트특구 개발은 올해로 3년 넘게 답보 상태다.
골프장과 스키장,워터파크 등을 갖춘 종합 리조트를 세우려던 이 계획은 군부대가 포사격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대체 사격장을 찾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제대로 사업이 추진될지 미지수다.
연천군이 민간사업자와 구상했던 다목적 캠핑장 건설 등 관광지 개발 사업도 비슷한 이유로 무산됐다.
인근 군부대 측은 포병사격장이 근접해 안전 확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향후 관광지로 개발되면 포탄 사격 때 소음 및 진동으로 민원 발생이 예상된다며 반대했다.
연천군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2∼3년 사이 군부대 동의를 받지 못해 개발이 보류된 사업은 소방서 신축,의료기관 설치,골프장 건설,규석 광산 개발 등을 포함해 20건이 넘는다.
경기 북부 지자체들이 미군이 반환하는 공여지에 대학을 유치하려는 사업도 성사가 불투명하다.
의정부시는 이곳에 광운대 제2캠퍼스를 유치할 계획으로 양해각서까지 교환했지만 건설교통부가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소극적이어서 언제 성사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강대가 파주의 미군 공여지에 글로벌 캠퍼스를 내년에 착공하려는 계획도 발표된 일정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다.
4년제 대학을 세울 수 없다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융통성있게 적용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군사훈련 등으로 사유재산권이 침해되기 일쑤지만 어디다 하소연하기도 힘들다.
포천 주민 임채성씨는 "개인 농지 등에 주인 허락도 없이 포 진지 등이 구축되는 사례가 흔하다"며 "접경지에서는 지자체장보다 군부대장이 주민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규제 위에 또다른 규제
강원도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개별법에 따라 이용 규제를 받는 토지를 모두 합치면 2만7848.31㎢로 전체 도 면적의 1.7배에 달한다.
도심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땅이 군사시설보호구역,보전산지,농업진흥지역 등으로 이중삼중의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현지 공무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는 군부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게 기본이다. 강원 철원은 전체 면적의 100%,경기 연천은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이와 함께 경기 접경지는 일률적으로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규제가 적용된다.
산이 많은 강원 접경지는 대부분 환경 관련 법령에 따라 개발행위 자체가 제한되며 이외에 문화재법,농지법,산지법 등의 규제도 상당하다.
김규배 연천군수는 "연천의 첫 산업단지인 백학단지가 이달 초 기공식을 가졌지만 지난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문화재 발굴로 1년여를 허비한 뒤 부지를 옮겼던 과정,20m 고도제한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힘들게 군 동의를 받던 일,환경·교통·재해·인구 영향평가를 어렵게 통과한 일은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말했다.
접경지에 개발 브로커들이 활개치는 이유도 넘쳐나는 규제 때문이다.
군 동의 확보를 미끼로 개발부지 3.3㎡(1평)당 1만원이 넘는 돈을 요구하는 전문 브로커가 적지 않다고 파주시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해 말에는 군 허가 관련 로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현직 경찰관이 구속되기도 했다.
고창수 경기북부지역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경기 접경지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줄잡아 16개 법령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기반 하나 없는 군 지역까지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류종헌 강원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지 이용 제한은 정밀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지역이 상당하다"며 "재조사를 통해 규제 지역의 합리적 조정 및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sookim@hankyung.com
< 용어 풀이 >
접경지역=군사분계선과 가까워 안보상의 이유로 개발이 지체된 낙후지역을 말한다.
민간인통제선(휴전선 남쪽 15km)에서 남방 20km 이내 지역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정부는 2000년 접경지역지원법을 제정하고 인천 강화.옹진,경기 동두천.고양.파주.김포.양주.연천.포천,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3개 광역시.도에 걸쳐 15개 시.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경지로 지정했다.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든,개인이 하는 사업이든 개발 계획을 세우는 걸 볼 때마다 '그렇게 많은 규제를 어떻게 뚫으려고…'하는 걱정부터 앞섭니다."(김규배 경기 연천군수)
"고속도로가 없는 지역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여기가 이름만 수도권일 뿐 바로 그런 오지예요.
큰 공장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습니다."(경기 접경지 주민 김규종씨)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은 한결같이 각종 '규제' 때문에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안보상의 이유로 반세기 넘게 피해를 감내해온 만큼 보상 차원에서라도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을 쏟아냈다.
◆무산되는 개발 프로젝트
강원 철원군이 명지대재단과 함께 철원군 갈말읍에 추진해온 명지리조트특구 개발은 올해로 3년 넘게 답보 상태다.
골프장과 스키장,워터파크 등을 갖춘 종합 리조트를 세우려던 이 계획은 군부대가 포사격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대체 사격장을 찾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제대로 사업이 추진될지 미지수다.
연천군이 민간사업자와 구상했던 다목적 캠핑장 건설 등 관광지 개발 사업도 비슷한 이유로 무산됐다.
인근 군부대 측은 포병사격장이 근접해 안전 확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향후 관광지로 개발되면 포탄 사격 때 소음 및 진동으로 민원 발생이 예상된다며 반대했다.
연천군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2∼3년 사이 군부대 동의를 받지 못해 개발이 보류된 사업은 소방서 신축,의료기관 설치,골프장 건설,규석 광산 개발 등을 포함해 20건이 넘는다.
경기 북부 지자체들이 미군이 반환하는 공여지에 대학을 유치하려는 사업도 성사가 불투명하다.
의정부시는 이곳에 광운대 제2캠퍼스를 유치할 계획으로 양해각서까지 교환했지만 건설교통부가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소극적이어서 언제 성사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강대가 파주의 미군 공여지에 글로벌 캠퍼스를 내년에 착공하려는 계획도 발표된 일정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다.
4년제 대학을 세울 수 없다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융통성있게 적용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군사훈련 등으로 사유재산권이 침해되기 일쑤지만 어디다 하소연하기도 힘들다.
포천 주민 임채성씨는 "개인 농지 등에 주인 허락도 없이 포 진지 등이 구축되는 사례가 흔하다"며 "접경지에서는 지자체장보다 군부대장이 주민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규제 위에 또다른 규제
강원도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개별법에 따라 이용 규제를 받는 토지를 모두 합치면 2만7848.31㎢로 전체 도 면적의 1.7배에 달한다.
도심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땅이 군사시설보호구역,보전산지,농업진흥지역 등으로 이중삼중의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현지 공무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는 군부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게 기본이다. 강원 철원은 전체 면적의 100%,경기 연천은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이와 함께 경기 접경지는 일률적으로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규제가 적용된다.
산이 많은 강원 접경지는 대부분 환경 관련 법령에 따라 개발행위 자체가 제한되며 이외에 문화재법,농지법,산지법 등의 규제도 상당하다.
김규배 연천군수는 "연천의 첫 산업단지인 백학단지가 이달 초 기공식을 가졌지만 지난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문화재 발굴로 1년여를 허비한 뒤 부지를 옮겼던 과정,20m 고도제한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힘들게 군 동의를 받던 일,환경·교통·재해·인구 영향평가를 어렵게 통과한 일은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말했다.
접경지에 개발 브로커들이 활개치는 이유도 넘쳐나는 규제 때문이다.
군 동의 확보를 미끼로 개발부지 3.3㎡(1평)당 1만원이 넘는 돈을 요구하는 전문 브로커가 적지 않다고 파주시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해 말에는 군 허가 관련 로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현직 경찰관이 구속되기도 했다.
고창수 경기북부지역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경기 접경지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줄잡아 16개 법령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기반 하나 없는 군 지역까지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류종헌 강원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지 이용 제한은 정밀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지역이 상당하다"며 "재조사를 통해 규제 지역의 합리적 조정 및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sookim@hankyung.com
< 용어 풀이 >
접경지역=군사분계선과 가까워 안보상의 이유로 개발이 지체된 낙후지역을 말한다.
민간인통제선(휴전선 남쪽 15km)에서 남방 20km 이내 지역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정부는 2000년 접경지역지원법을 제정하고 인천 강화.옹진,경기 동두천.고양.파주.김포.양주.연천.포천,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3개 광역시.도에 걸쳐 15개 시.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경지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