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한 정재영, 정준호 주연 장진 감독의 액션 영화 '거룩한 계보'가 추석날 밤 KBS 2TV에서 방영된다.

장진 영화하면 떠오르는 것은 조근조근 리듬을 맞추면서 생뚱맞은 결론을 향하는 수다이다.

그런데 그 말의 잔치인 수다는 솔직한 자기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의 수줍은 속내를 들킬까봐 말을 열심히 주워 삼키는 것에 가깝다.

인물들의 진심은 긴 수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짧고 뭉툭한 대사나 말없는 행동 속에 감춰져 있다.

영화 '거룩한 계보'는 바로 이 '말없이 통하는' '싸나이들'의 의리와 우정을 이야기 한다.

"야.IMF 끝나고 경제사범 무더기로 쏟아질 땐 교도소 꽉 차서 대강 넘어갔어.그 혜택 입은 게 바로 니들 월드컵 세대들이야.그때 칼질한 새끼들 축구 4강 가니까 기분 들떠서 그랬나 보다 해서 많이 봐줬으니까."(취조 중인 검사)

"나요….군대 현역 갔다 왔지요. 또 몸뚱이에 문신이라고 한 개도 없지요. 순천 지역 유네스코 회원에다가 매년 삼만원씩,뭐시냐 그 국경 없는 의사회 성금도 낸다 이 말이요. 아 근디 내가 어딜 봐서 깡패요?" (주중역 정준호)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조폭영화 '친구'의 전라도 버전격이다.

조폭으로 성장한 죽마고우들의 우정이 심한 전라도 사투리에 실려 전달된다.

사투리는 코믹한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작 코미디 '아는 여자'(2004)와 '킬러들의 수다'(2001) 등에 선보였던 장진식 입담과 유머가 이 작품에도 짙게 배어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이라는 허무 개그가 검사와 피의자 사이에 등장한다.

'빨갱이'와 '연쇄살인마'가 갇힌 교도소 독방에서도 유머는 피어난다.

사형수는 회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순정만화 주인공 캔디의 문신을 등에 새긴다.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는 장르의 관습을 넘어섰다.

위트와 유머가 잔혹주의와 비장미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은 이 영화의 약이자 독이다.

극의 정서와 연출의 방향이 엇박자를 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진지하기만 한데,연출자는 가볍게 보도록 주문한다.

주인공 일행은 복수를 위해 탈옥하지만 탈옥 행각이 너무 희화화됐다.

그래서 관객들은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할 겨를도 없이 곧 빠져나와야 한다.

연출자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극의 반향이 감소되는 법.조폭들의 복수극 이야기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했더라면 보다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중간보스 동치성(정재영)은 형님의 명령으로 칼을 휘두르고 복역하지만 상대편 보스가 자신의 부모를 해쳤는 데도 조직이 나몰라라 하자 탈옥한다.

복수에 나선 치성은 어린 시절 친구이자 조직의 동료인 주중(정준호)과 대결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