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졸 흐르는 시냇가,아름다운 분수대,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푸르른 잔디 정원….요즘 아파트 내부 구조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도 그 아파트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공간들은 과연 누가 디자인하는 것일까? 조경사 아니면 건축 디자이너? 정답은 '환경 디자이너'다.


1997년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조경학을 공부한 황윤혜씨(33)는 2001년부터 7년째 솜씨 환경디자인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 디자이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환경 디자인에 대해 그는 "공공성을 지닌 외부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환경 디자인은 조경건축에서 특화된 분야로 간판,울타리,분수대 등 거리의 가구들을 건물,자연,사람 등 주변의 환경과 조화롭게 재구성하는 일이라는 것.

우리가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바닥의 포장도 아무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깔아놓은 게 아니라 환경 디자이너들이 아파트의 이미지나 자연경관과 어울리게끔 벽돌의 배색과 패턴 등을 찾아낸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황씨는 얼마 전 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환경디자인부문의 차세대 선도 디자이너에 선정돼 '선도 디자이너 프로젝트' 일환으로 지난 8월 미국 보스턴에서 그의 디자인 작품을 전시했다.

수천개의 나뭇잎 금색판을 호숫가와 숲속 길에 낙엽처럼 깔았다.

그는 "볼품 없던 주변을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해 이런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금색 나뭇잎 자체는 인공적이지만 이것이 존재하는 위치와 배열에 따라 자연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가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관 디자인은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라며 "숨겨진 보물을 찾듯 그곳에 벤치 하나를 설치해 사람들이 앉아서 그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장면을 새롭게 발견할 때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작업 과정은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대부분 장소와 주변 이용자들을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분석 자료와 환경의 용도,클라이언트의 의도 등을 토대로 주제를 결정하면 각각의 디자인 요소들을 찾아내는 단계에 들어간다.

그는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게 부각된다"고 말했다.

옥상의 경관에 중점을 둘지,창밖으로 바라보는 경관을 강조할 것인지에 따라 신경 써야 할 디자인 요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채광에 따라 전반적인 색채가 변하기도 하고 바위가 물과 닿아 이끼가 껴 시간이 흘렀을 때 원래 물체들이 지녔던 색이 변할 수 있으므로,이런 미세한 부분까지도 초기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

그는 "환경 디자인은 노력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생활의 일부에서 탄생한다"고 말했다.

'내 아이가 뛰어 노는데 서 있기만 하면 힘들테니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곳에 적절한 벤치를 놓아 두면 그게 환경 디자인이 되는 것이라고.

황씨가 환경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 것은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공공의 가치를 만들어 내고 싶어서였다.

이런 뜻을 품고 처음 입문한 직업은 전시 디자이너였다.

그러다가 1997년 한 조경회사와 전시를 같이 진행하면서 환경 디자인 분야를 접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었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환경 디자인을 따로 공부하는 학과가 없었다.

대신 들어간 곳이 서울대 환경대학원이었다.

그곳에서 시각,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건축학,인문학 전공자들과 함께 건축,색채,정책 등의 분야를 하나로 연관짓는 법을 배웠다.

2001년 대학원 졸업 후 황씨는 간판을 만들어 주던 솜씨 환경 디자인 연구소에 들어갔다.

당시 3명이었던 디자이너가 지금은 15명으로 불어났다.

아파트 외부의 색상,아파트 간판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정책적으로 경관 개선 계획 조항이 생기면서 점차 일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아직까지도 환경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고 있지만,1990년대 후반부터 공동주택시장이 팽창하고 뉴타운과 공원 조성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추진되면서 환경 디자인 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황씨가 디자인 실장을 맡고 있는 솜씨 환경 디자인 연구소는 유력한 환경 디자인 전문업체로 성장하면서 6년 전 20억원이었던 연 매출이 지난해 150억원으로 불어났다.

SH공사,대우,현대,GS 등 건설사의 환경 디자인 용역,아현 뉴타운 색채계획,한산판교 재래시장 활성화 계획 등 많은 프로젝트를 맡으며 2006년 공간 디자인 부분 굿디자인,2005년 대한민국 건설문화대상 기술개발부문,살기좋은 아파트 국무총리상 등 다수의 상을 휩쓸었다.

그는 잘 꾸며진 조형물은 부르는 게 값이 될 수 있지만 그냥 자연으로 보고 경관의 가치를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환경 디자인이 비싼 아파트,살기 좋은 아파트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사회 환원 차원에서 공공의 환경을 디자인하는 일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그의 새로운 시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황씨는 지금 하버드 대학원 조경건축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그는 "환경 디자인의 개념이 잘 정립돼 있는 이곳에서 1년반 동안 공부하며 환경디자인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