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따른 신용위기로 타격을 입은 것 중 하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나가던 헤지펀드다.

베어스턴스는 지난 6월 말 2개의 헤지펀드를 청산하면서 금융위기에 불을 지폈다.

천하의 골드만삭스도 대표 헤지펀드의 청산을 막기 위해 30억달러를 긴급 수혈하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엄청난 수익률을 안겨주는 보물상자로 여겨지던 헤지펀드에 대한 신뢰성도 흔들리고 있다.

돈을 싸들고 헤지펀드 문을 두드리던 공공기금과 연기금 등도 투자를 망설이기에 이르렀다.

헤지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건 처음이 아니다.

굵직한 금융위기 때마다 헤지펀드는 빠지지 않았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때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헤지펀드였다.

그럴 때마다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헤지펀드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헤지펀드가 가진 첨단 금융기법과 순발력,정보력이 어우러져 빼어난 수익률을 낸 덕분이다.

헤지펀드가 과연 서브프라임 파문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헤지펀드는 말 그대로 위험을 회피(hedge)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49년 미국의 알프레드 존스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보유(롱포지션·long position)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회피할 방법이 없는지 모색했다.

그 결과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주식을 빌려 미리 파는 방법(공매도·short selling)을 고안해 냈다.

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주가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게 된 것.이로써 수익률은 시장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어떤 종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이런 장점 때문에 헤지펀드는 나름대로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와 80년대 부침을 겪은 후 90년대부터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현재는 줄잡아 1만여개의 헤지펀드가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만 1조8000억달러(약 1690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작년 국내총생산(GDP) 8880억달러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이렇듯 성장세가 빨라진 데는 헤지펀드가 첨단 금융기법을 갖추고 있는 데다 국경을 뛰어넘는 순발력과 엄청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 고수익에 집착하는 펀드와 특정 국가의 환율을 공격하는 펀드가 나타나면서 이미지가 많이 흐려졌다.

특히 일반 뮤추얼펀드와는 달리 감독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다보니 '왠지 나쁘고 위험한 것 같다'는 인식도 퍼졌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나름대로의 내부 규칙을 갖고 있다.

연기금과 공공기금 등 기관투자가와 최소 연소득이 20만달러이거나 순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인 개인들로 투자자를 한정하고 있다.

또 외부 회계법인을 두고 객관적인 자산평가를 하는 편이다.

다만 자산운용 등에 거의 규제가 없는 점을 활용,선물 옵션 스와프 등 파생상품은 물론 복합 금융기법을 워낙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어 자산평가 자체가 쉽지 않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문제가 됐던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에쿼티 오퍼튜니티스 펀드는 일종의 '퀀트펀드(Quant fund)'다.

한마디로 시장의 과거 움직임을 토대로 구성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적으로 매매시점을 포착해 매매하는 펀드다.

그런 만큼 이 펀드의 생명은 과거 기록을 정교하게 분석한 뒤 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고도의 수학과 물리학 등이 사용된다.

비단 퀀트펀드만이 아니다.

대부분 헤지펀드엔 수학과 물리학이 기본이다.

펀드를 설계할 때부터 운용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구사하는 금융공학이 필수적이다.

그러다보니 천재적인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작년 15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은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시몬스는 수학자 출신이다.

MIT와 하버드대에서 교수를 지내다 40세에 월스트리트에 입성했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본사는 수학 과학 공학 등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많은 학자들로 가득하다.

최근엔 위성사진 판독과 수정에 정통한 천문학자들까지 합류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그가 1989년에 만든 '메달리온 펀드'는 작년까지 연평균 36%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내고 있다.

수학자와 과학도의 헤지펀드 입성은 헤지펀드의 위험성을 줄이고 투자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줬다.

이로 인해 신뢰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의 맹점은 불가측적인 상황변수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흐름을 분석한 뒤 미래의 흐름을 예상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과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대처하는 순발력이 떨어진다.

천하의 골드만삭스가 이번에 꼼짝없이 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의해 거래되는 다른 퀀트펀드의 내상이 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비슷한 머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수학자나 과학자들이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니 퀀트펀드의 프로그램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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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특정한 시장 상황이 발생하면 대부분 펀드에서 똑같이 매도를 해버려 수익률은 더 하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헤지펀드가 철저한 수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투자기법에 충실한 건 아니다.

헤지펀드 하면 오히려 공격적인 면이 떠오른다.

실제가 그렇다.

'헤지펀드의 귀재'라고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다.

소로스는 1992년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을 대상으로 파운드화를 투매하는 공격을 퍼부었다.

잉글랜드은행은 결국 손을 들었고 소로스는 일주일 만에 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외에도 1994년 멕시코 금융위기,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사태 등에도 소로스 펀드 등 헤지펀드가 개입됐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렇지만 모든 헤지펀드가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기법을 구사하는 건 아니다.

헤지펀드 전체 자산 중 소로스처럼 특정 국가의 환율 움직임 등에 투자하는 이른바 '글로벌 매크로(Global macro)'를 구사하는 펀드는 8%에 불과하다.

전체의 46%는 헤지펀드의 원론에 충실하게 '주식의 매입과 공(空)매도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특정 기업이 부도 났거나,인수합병을 앞두고 있는 등 대형 사건을 이용해 차익을 추구하는 '이벤트 중심(Event driven)' 자산도 전체의 22%에 달한다.

헤지펀드의 문제는 투자기법이 워낙 빨리 발전하다보니 시장조차 그 기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즉 헤지펀드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영향을 줄지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헤지펀드가 관여된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힘들다.

금융위기가 터질 때마다 헤지펀드에 대한 일정한 금융감독 테두리를 만들어 투명성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헤지펀드들은 이럴 경우 첨단 금융기법이 발전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펄쩍 뛰지만 금융위기가 빈번해질수록 헤지펀드에 대한 감독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하영춘 특파원/케네스 강 딜로이트 시니어매니저 (헤지펀드 담당) tkang@deloit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