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2년(1865년)에 중건된 광화문의 원래 위치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6일 광화문터 발굴조사 현장에서 설명회를 갖고 "지난해 말 해체·철거된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11.2m,서쪽으로 13.5m 떨어진 곳이 광화문의 원래 위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광화문의 원래 위치는 남쪽으로 14.5m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왔다.

연구소는 또 "1968년 복원돼 지난해 말 철거된 광화문이 경복궁의 축에서 3.75도 틀어져 있었던 데 비해 원래의 광화문은 경복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발굴 결과 광화문터와 그 남쪽으로 이어진 섬돌 광장인 월대(月臺),광화문의 동서로 연결되는 경복궁의 궁장지(담장터)와 당시 사람들이 걸어다니던 도로가 현재의 아스팔트 도로 60~70cm 밑에서 확인됐다.

현재까지 드러난 광화문터는 기단석을 기준으로 동서 34.8m,남북 10.2m(총 14.7m)로 전체 넓이의 3분의 2가량이다.

광화문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쌓아 만든 육축(陸築) 위에 정면 3칸,측면 2칸의 문루를 세웠으며 육축에는 3개의 무지개문(홍예문)을 냈다.

이 가운데 왕이 출입하던 중앙문은 남쪽 너비가 500cm로 가장 넓고,문관과 무관이 각각 출입하던 동문과 서문은 너비가 같은 350cm로 같다.

월대는 광화문터의 남쪽에 연결돼 동서 29.7m,남북 8.3m가 확인됐다.

월대의 남북 길이는 52m로 추정되기 때문에 세종로 지하에 43.7m가 더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조사 결과 월대 좌우의 난간석은 없어졌으며 중앙 부분에서는 임금이 다니던 폭 520cm의 어도(御道) 흔적이 발견됐다.

또 일제 때 만든 전차 선로의 침목 일부와 목제 전신주 흔적이 드러났고,청자 뚜껑과 분청사기,백자,청화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기와,전돌 등의 유물도 출토됐다.

연구소는 "유구 하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광화문과 월대 및 궁장의 축조방식을 확인하고 선대(先代) 유구의 유무를 파악해 태조 연간과 고종 연간의 광화문의 위치 이동 여부 등도 파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