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 도쿄 니혼바시의 특설 텐트 안은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음악으로 가득찼다.

늘씬한 모델들이 무대 위에 서자 관람객들은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했다.

밀라노,파리,런던,뉴욕과 함께 세계 5대 패션 컬렉션으로 꼽히는 도쿄 컬렉션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도향호씨(53)의 옷이 소개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동안 요지 야마모토,이세이 미야케 등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거쳐간 도쿄 패션위크에 도씨가 디자인한 217개의 의상들이 선보였다.

당시 650개의 좌석이 마련된 공간에 1053명의 관객이 몰려들었을 만큼 도씨의 옷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때 그가 선보인 옷은 1998년부터 전개해 오고 있는 대구발 디자이너 브랜드 '도호(DOHO)'.지난해 전국 37개 매장에서 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도씨의 옷은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대부분의 서울발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달리 도호는 대구에서 출발,아래 지방에서부터 차근차근 세력을 확장시켜 온 브랜드라 패션 디자이너 도향호의 이름은 서울보다 대구,울산,창원 등에서 더욱 유명하다.

현재 도호는 대구,울산,창원,마산 등의 각 지방 백화점의 브랜드 매출 순위에서 상위에 올라있다.

여성의류 브랜드 중 4강에 꼽힐 정도다.

도호의 가격대는 정장 한 벌이 보통 80만~100만원.한 단계 업그레이된 블랙 라벨 제품은 이보다 30% 비싸고,패션쇼에서 선보였던 골드 라벨 제품은 재킷 하나가 200만원을 호가한다.

그의 옷은 옷걸이에 걸려있을 때는 전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좌우를 다르게 입체 패턴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입어봐야 디자인의 진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그의 옷은 마치 18세기 로코코 시대 귀족들의 옷을 연상케 한다.

물결치는 듯한 프릴 장식과 좌우 비대칭의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은 많은 20~30대 여성들을 '도호 마니아'로 만들었다.

어떤 마니아는 지난 도쿄 컬렉션 무대에 섰던 옷을 한꺼번에 1억3000만원어치나 사갔다고.

도씨는 어느 장소에 있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옷을 탄생시키는 게 그가 지금까지 지켜온 디자인 철학.그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 옷도 각각 다르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같은 디자인의 제품도 조금씩 변형시키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은 매일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로 넘쳐난다.

신제품들이 매장에 자주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고객들은 대부분 1주일에 한 번씩은 매장을 찾는 편.

그는 "이렇게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킬 수 있는 건 소재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방가르드한 그의 옷은 특별한 소재로 더욱 빛을 발휘한다.

그는 "막상 디자인을 했는데 소재가 받쳐주지 않아 그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디자인에 신경쓰기 전에 소재를 개발하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특별한 소재 덕택에 그의 옷은 카피가 불가능하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은 대구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대구에는 섬유공장들이 많기 때문에 디자인을 하다가도 특별한 소재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즉시 공장에 가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어서 그만큼 시간이 절약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 섬유업체들은 창의적인 아이템 개발이 부족할 뿐 소재를 만들어 내는 기술력은 매우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와 섬유업체가 협력해 좋은 소재를 개발하면 디자이너는 좋은 디자인의 옷을 뽑아낼 수 있어 좋고,이런 소재들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섬유업체들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 좋다는 것.그는 의상 디자인이나 미대 전공자가 아니다.

단지 옷이 좋아서 디자인에 심취해 있다보니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라오게 됐다고.그의 튀는 옷차림은 지금의 남편이자 도호 브랜드를 경영하고 있는 ㈜혜공 대표인 김우종씨(53)에게도 띄어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됐다.

그는 1978년 당시 디자이너였던 김씨와 결혼하고 나서야 의상디자인에 뛰어들게 됐다.

부부는 숍을 차릴 여건이 안돼 부잣집을 찾아 다니며 맞춤옷을 제작해 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1981년 드디어 남편의 이름을 딴 '김우종부티크'를 냈고,이후 매년 대구 컬렉션에 참가하는 열정을 쏟으며 대구 지역에서 점차 고객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8년 세컨드 브랜드인 지금의 도호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것.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때라 주변에서는 모두 브랜드 확장을 말렸지만 옷이 인생의 전부였던 도씨에게는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해외 진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도쿄 컬렉션을 시작으로 도호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것.지난 번 도쿄 컬렉션을 계기로 도씨의 옷은 29일부터 31일까지 다시 일본에서 선보인다.

지난 3월 일본 바이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도쿄의 롯본기 힐즈에서 진행되는 '룸즈(일본 유명 패션제품 전시회)'에 초청을 받게 됐다.

그는 "바이어들이 직접 제품을 보고 싶어했다"며 "이번에는 우리 매장이 들어갔으면 하는 일본 백화점 바이어들을 불렀다"고 말했다.

패션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쇼를 통해 해외에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한국 디자이너 도향호라는 이름을 알리는 게 목표"라며 "앞으로 3~4년 안에 세계의 주요 패션 도시에 매장을 낼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한 포부를 보였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