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민주화는 이미 이뤄졌고 새로울 게 없다.

'내가 민주개혁세력'이라고 해봤자 '그러세요.

그래서 어쨌다구요'라는 답이 돌아오는 시대"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화가 이미 이뤄졌는지는 논란거리지만,날카로운 지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민주화'라는 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환멸과 혐오의 느낌은 가히 지독한 수준이다.

'참여'와 '민주'는 한때 대안(代案) 정치의 콘텐츠이자 메시지였으나 그 전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과 함께 추락했다.

대한민국의 정치시장에서 이들의 주가는 절망적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 지도자와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하는가.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리지만,답하기가 쉽지는 않다.

참여정부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옳은 길이라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올곧게 가라고 주문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주류언론과 맞짱을 뜨거나 농민·노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등 정권의 이해관계로만 따지자면 손해 보는 장사를 많이 했던 것이 참여정부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정치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통속적인 지혜를 극복할 수 없었기에 몰락의 길이 시작됐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주지 못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대권후보로 나선 한명숙 전 총리는 후보토론회에서 참여정부 실패론에 동조하지 않는다면서도 '소통(疏通)과 민생에 있어서는 과(過)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통과 민생이라면? 국가안보만 더 하면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에게 줘야 할 모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단순한 과오를 넘어서 정치 전체의 실패를 자인한 것은 아닌가.

소통이 안 된 것을 언론 탓으로 돌리거나 민생이 나아지지 못한 것을 외부환경 또는 기득권세력이나 투기세력 탓으로 돌리려 하겠지만,'소통과 민생에 과가 있다'는 '팩트(fact)'를 인정한 것이라면,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통의 반대는 단절과 분열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통합'을 들고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인간 이명박의 성공은 경제와 성장의 이미지와 버무려져 있으니,그가 경제를 내세워 성공가도를 걸어 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는 한 전 총리가 과가 있다 한 바로 그 민생을 해결하겠다며 경제대통령을 표방하였고,그 결과 마치 본선인양 야단법석을 벌였던 경선에서 대중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결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었다.

한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유행시켰던 말처럼 살림살이 나아졌는지가 문제였다.

아무리 참여니 민주니 탈(脫)권위니 해도 경제와 민생이 나아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게 이 시대의 민심의 코드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감행한 모든 시도들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변화의 의미도 작지 않다.

또 참여정부의 주동자들은 자신의 정치실험을 훗날 역사가들이 평가해 주리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숨은 그림이 있다.

탈권위와 파격의 이벤트를 벌이면서 놓쳐버린 부분,이 시대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상(像)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위를 타파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대안을 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신뢰가 없으면 국민들에게,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

국민이나 시장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선진국들이 대통령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써 온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참여정부의 가장 큰 과오는 바로 그런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상을 만들어 내지 못한 데 있었다. 대통령상의 실종과 소통의 단절,그리고 민생 부진,이 세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빚어진 결과가 바로 참여정부의 답답한 오늘이다.

참여정부는 아마도 한 일에 비해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준비된 정부'는 아니었지만 나름 무진 애를 썼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성과나 업적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