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고 신기 편한 구두 추구… 직접 디자인·기획 참여

지구에서 20광년 떨어진 머나먼 우주에 글리제581c라는 행성이 있다. 이 행성은 바위나 바다로 덮여 있고 물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바에 의하면 우주에서 가장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별이라고 한다. 글리제(www.gliese.kr)는 ‘새로운 세상을 밟을 만한 새로운 구두’라는 뜻을 담아, 글리제581c의 이름을 따온 온라인 구두 쇼핑몰의 이름이다. 속뜻을 모르고 접해도 멋스러운 구두 브랜드의 이름으로 꽤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 글리제는 방송인 안혜경 씨(27)가 (주)구두그리고사람들(대표 김나영)과 손잡고 만든 쇼핑몰이다. 반년 정도의 준비 끝에 6월에 런칭한 후 이제 갓 한 달이 흘렀다. 오픈 첫날에는 안혜경이 운영하는 쇼핑몰이라는 뉴스 때문에 서버가 다운됐을 정도로 화제가 됐고 그 후 꾸준하게 일정한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처음부터 큰 욕심은 내지 않으려고요. 안혜경의 구두 쇼핑몰이라는 호기심에 반짝 인기를 얻기보다 제품이 정말 좋다는 입소문이 전해지면서 갈수록 매출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제법 사업가다운 면모를 보이는 그녀의 다부진 포부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수제화로 승부

방송 활동 외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주변의 권유에 힘입은 것이다. ‘방송만 잘하면 됐지’라던 그녀에게 주변의 선배들이 부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던 것이다. 지금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연예인에게는 노후를 위해서라도 부업이 필수적이라는 충고였다.

“연예인도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예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계나 미래를 생각하며, 생활인이자 사업가로서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녀가 애초 손을 대려던 분야는 의류 관련 쇼핑몰이었다. 평소 의상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워낙 많은 연예인들이 성공적으로 진출해 있는 터라 의류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 와중에 예상치 않게 구두와 연을 맺게 된 것에는 개인적인 계기가 있다. 방송 진행을 하다 보니 예쁜 구두를 신기는 해야겠는데,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금세 부어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협찬을 받아 여러 브랜드의 구두를 신어 보았지만 내 발에 딱 맞는다 싶은 구두는 좀처럼 없었다.

“동네에 나갈 때 신는 슬리퍼처럼 발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멋이 나는 구두가 없을까 고민했지요. 구두 디자인을 하는 지인이 제 말을 듣고 신발을 만드는 공방을 소개해 주었어요. 구두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이 신고 싶은 구두를 스케치해서 공방을 찾아갔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줄기차게 구두 디자이너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의류보다 희소성이 있다는 생각에 또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무기로 자신의 이름만 걸고 별다른 노력 없이 쇼핑몰을 열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주변의 선배들도 그녀를 말렸다. 고급 브랜드의 명품 구두와 인터넷이나 동대문 등에서 싸게 살 수 있는 구두가 쏟아져 나오는 판인데, 거기서 거기인 구두로는 사업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오기가 나서 더 열심히 했다는 안혜경은 결국 구두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며 쇼핑몰을 열기에 이른다.

“구두는 겉감보다 보이지 않는 안쪽에 들어가는 재료를 좋은 걸로 써야 합니다. 속에 어떤 소재를 썼는지가 구두의 가격을 결정하지요.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소재를 쓰고, 주름을 잡거나 장식을 박는 일은 디자이너들이 일일이 손으로 하고 있어요. 디자인 면에서는 트렌드를 따라가더라도 흔하지 않은 구두가 나오도록 신경을 씁니다. 판매 중인 제품에는 제가 직접 디자인한 구두들도 있습니다.”

회사에는 디자이너 다섯 명과 관리·마케팅을 담당하는 인력 여섯 명을 합해 열두 명이 근무하고 있다. 특히 디자이너들은 직접 가죽을 두드려 가며 구두를 만들어 왔던 노장부터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신세대까지 조화를 이루어 일한다. 글리제의 독특한 점은 애프터서비스를 전담하는 외주 인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봄과 여름 시즌을 끝내고 가을과 겨울 상품을 준비 중인데, 시즌 준비와 별도로 애프터서비스 이벤트를 마련했다. 고객이 올 여름에 신었던 신발을 글리제에 보내면 새것처럼 보수해 내년 여름에 다시 신을 수 있도록 돌려주는 이벤트다.

“연예인이 하는 쇼핑몰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팔고 있는 상품의 질에 신경 쓰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건 기본이에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교환, 반품, 애프터서비스까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쇼핑몰 운영에 대한 그녀만의 의지와 열정이 보인다.

TVn 연예e-뉴스와 EBS 코리아코리아를 비롯해 진행과 게스트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안혜경은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이상 회사에 들른다. 연예 활동을 하면서 남보다 빨리 패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에 이것저것 의견을 내놓는 것이 일이다. 회사 디자이너들은 고정된 틀을 깨는 그녀의 아이디어에서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반면 그녀는 구두만 보고도 발의 모양과 걸음걸이를 알아내는 전문가들에게서 구두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고 있다.


애프터서비스까지 완벽하게 처리

“이제는 사람을 볼 때 옷이 안 보이고 구두만 보여요. 의상을 보더라도 저런 의상에는 어떤 구두가 더 잘 어울릴 텐데, 상상하게 됩니다. 요즘은 글리제 제품만 신고 다니지만 일부러 여러 브랜드의 매장을 돌아다니며 될 수 있는 한 많은 구두를 신어보고 느낌을 정리해 보기도 합니다.”

글리제의 목표는 여자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레드카펫을 밟는 기분을 선사하는 것이다. 특별한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나 신는 줄 알았던 구두를 일반 여성들도 편안한 느낌으로 신고 다니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여성들을 위해 온라인 외에 오프라인 매장 진출 계획도 머릿 속에 그리고 있다. 안혜경 개인적으로는 당초 하고 싶었던 의류 쇼핑몰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연예 활동 쪽으로는 가을 무렵 그녀가 출연하는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될 예정이다. 또 오랜 소원인 심야방송 DJ도 추진 중이다. 쇼핑몰과 방송 때문에 스케줄이 빡빡해도, 그녀 자신은 활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주어진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는 모습에서 브라운관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그동안 기상캐스터, 방송인으로 사람을 대하고 쇼핑몰을 준비하는 등 이런 일 저런 일을 겪는 동안 예전보다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지금은 아침에 뜨는 해가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 한경비즈니스 6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