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기업들에 세금을 지금보다 더 내도록 하는 법안이 미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일 다국적기업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미국 밖의 조세피난지역을 활용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내용의 일명 '도겟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로이드 도겟 의원이 제출한 이 법안은 다음 달 상원에서 최종 논의될 예정이다.
그동안 상당수 다국적기업들은 영국 네덜란드 등 미국과 조세협약을 맺은 나라 중 세율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거의 없는 나라들에 자회사를 세운 뒤 이곳을 경유해 이익금을 본사에 송금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줄여 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에 본사를 두고 미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단 영국 내 자회사로 보낸 뒤 다시 싱가포르 등에 있는 본사로 송금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고 전했다.
도겟 법안은 이 같은 다국적기업의 '세(稅)테크'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보고 앞으로는 미국과 조세협약이 체결돼 있는 제3국을 거치더라도 미국과 다국적기업의 본사가 있는 국가가 맺은 조세협약에 따라 세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겟 의원은 이 법안으로 향후 10년간 미국 세수가 75억달러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만약 이 같은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게 되면 그동안 미국 지사에서 영국 금융 자회사로 세금 부과 없이 송금해 왔던 기업들이 부담을 안을 것이라며 그 대상으로 닛산을 포함한 일본 자동차회사들과 삼성 등을 거론했다.
다국적기업들은 미 의회의 이 같은 과세 강화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다국적기업 로비회사 연합체인 '국제투자기구(OFII)'의 토드 맬런 회장은 "도겟 법안은 미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게 된다"고 비난했다.
미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한 다국적기업의 임원도 "이번 법안은 미국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다국적기업들이 캐나다나 멕시코로 이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도 "도겟 법안이 미국의 국제조세협약의 틀을 흔들 우려가 있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미국의 법인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미 재무부가 주최한 한 모임에서 "과거와 같은 저금리 시대는 이제 끝났기 때문에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은 앞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늘어난 기업의 금융 비용을 상쇄해주기 위해 최고 35%에 달하는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