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들 현금 찾으러 은행몰려

사이버 금융회사도 파산선언

가상공간 '경제 중력법칙' 존재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금융위기가 3차원 가상현실 공간인 세컨드 라이프(www.secondlife.com)까지 영향을 줘 화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가상공간 최초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세계적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지난 18일자)에서 "세컨드 라이프에선 사람이 하늘을 날 수도 있지만 경제 법칙의 중력은 여전히 존재했다"며 세컨드 라이프까지 미친 금융위기의 위력에 놀랐다고 보도했다.

가상공간이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면 똑같은 사회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더한다.

잡지에 따르면 증시를 포함,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겪었던 지난주,세컨드 라이프에서도 현금을 찾으러 은행에 몰려드는 뱅크런(bank run)이 발생했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캐릭터인 아바타들이 앞다퉈 현금을 뽑으려고 현금인출기 앞에 장사진을 친 것.세컨드 라이프 내 금융회사인 깅코파이낸셜(Ginko Financial)은 결국 영업을 중단했다.

예금을 장기채권의 일종인 영구채(perpetual bonds)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세컨드 라이프 버전의 금융불안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

실제 세계와 달리 세컨드 라이프 경제에서는 금융기관들이 큰 역할을 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땅 투기,아바타의 신체 일부분 같은 디지털화된 물품의 거래,그리고 도박 목적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

지난주 이런 거래가 금지되면서 뱅크런이 촉발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도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처럼 '비이성적 과열'(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증시과열 양상을 두고 표현한 말)이 세컨드 라이프에서도 만연됐었고 이런 분위기가 뱅크런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작년 가을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언론들도 사이버 상의 파라다이스라며 연일 큰 기사로 다뤘다.

뭔가 큰 비즈니스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코카콜라와 IBM 등 대기업들이 이 곳에 숍을 속속 열었다.

텔레포트(원하는 장소로 순간이동하는 것)와 린든달러(세컨드 라이프의 통용 화폐) 등이 유행하면서 세컨드 라이프 시민들은 한 달에 100만명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경제적인 표현을 빗대면 2년 동안 한 달에 15~20%씩 성장해나갔다.

세컨드 라이프 내 디지털 영토도 뉴욕 맨해튼의 8배인 700㎢를 넘어섰다.

이러다보니 세컨드라이프를 운영하는 린든랩(Linden Lab)도 수요증대에 걸맞은 서버 증설이 어려웠다.

물론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세컨드 라이프에 등록한 주민은 총 770만명이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주민들은 극히 소수라고 한다.

일부 기업들은 세컨드 라이프 지점 문을 닫기도 했고 진짜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도 얼마 안 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아직은 세컨드 라이프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시련을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컨드 라이프의 경제와 통화가 타이트하게 관리돼온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1달러당 270린든 달러라는 환율을 지켜가기 위해 린든 랩은 돈을 늘릴 수 있는 일련의 금융정책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외환시장인 린덱스(LindeX)를 통해 외환거래에도 개입한다.

린덱스는 거래가 과열되면 잠시 거래를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도 도입했다.

현실의 금융불안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러 들어간 세컨드 라이프에선 서브프라임 같은 유령이 출몰하지 않기를 모든 사이버 시민들은 원하고 있을 것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