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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낯선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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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 潤 基 < 패션스타일리스트 intrend07@yahoo.co.kr >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답할 것은 없지만 지금도 굳이 운전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어쩌다 하루 여유가 생기는 날이면,아니 요즘처럼 예상치 않게 비를 만나게 되는 날이면 나도 차를 몰고 달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를 돌이켜보면 어떻게 했나 싶다. 인천에 살던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촬영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때로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통근했다. 지금보다 젊고 처음 일을 시작하던 때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한때는 운전면허증을 따 차를 몰고 다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는데,뭐가 그리 바빴는지….그리고 일이 더 많아지고 지금처럼 직원이 운전하고 다니는 차를 타기 시작하면서 몸은 편해졌지만 천천히 길을 걸으며,만원 지하철의 사람들 표정을 살피며 느끼던 재미는 사라졌다.

    나는 모험을 즐기는 편이 못된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도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다. 그래서 늘 가던 식당과 카페를 다시 찾게 된다.

    보통 계절을 타는 사람들은 봄과 가을에 그 기분을 느끼는데 요즘 부쩍 습해지고 어둡게 가라앉은 하늘 때문인지 나는 여름을 타게 된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일과를 모두 취소해 버리고 서울에서 내가 가보지 못한 낯선 동네를 찾고 싶은 충동이 일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해외 출장을 가서 유명한 랜드마크가 아닌 변두리 동네에 찾게 될 때마다 세계에서 큰 도시로 손꼽히는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가본 동네들이 몇이나 될까 꼽아보곤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서울에서 못 가본 동네들을 꼭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늘 기회를 갖지 못하고 또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다니던 동네만을 돌게 되었다.

    지난주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촬영이 취소된 어느날 오후,마음 같아선 차를 몰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싶지만 운전을 못하는 관계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시간이 된다는 한 친구를 만나 강북으로 차를 돌렸다. 북악터널을 지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길을 빗속을 뚫고 달렸다. 거세게 창문을 치는 비마저 이런 계획 없는 여행길에 낭만적인 요소로 자극해 음악을 크게 틀고 달리니 오랫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는 듯했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자유와 일상 탈출의 기쁨은 누려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지도를 하나 사야겠다. 서울에서 못 가본 낯선 동네들을 하나씩 방문해보고 싶다.

    이번에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꼭 실행에 옮겨봐야겠다. 갑자기 운전면허증이 절실히 필요해진다. 둘도 좋지만 그런 낯선 여행에는 혼자인 게 더 어울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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